다학제 재택의료·돌봄 사업에 왜 ‘한의사’를 배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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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문 기자
수정 2026-10-13 17:15
입력 2026-10-13 15:24

일본·싱가포르처럼 전통 의학 품는 개방적 지역돌봄 필요
공급자 밥그릇 싸움에 초고령사회 의료사각지대 발생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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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국가인 일본은 ‘회복기 재활병동(개호노인보호시설)’ 에 실제 가정집 형태(다다미방, 높낮이 조절 싱크대, 일본식 욕조 등)로 구현해 놓고 귀가 후 복귀를 돕고 있다. 의료진(작업치료사 등)은 퇴원 전 환자의 실제 자택을 직접 방문해 문턱, 계단, 화장실 환경을 점검하고 이에 맞춰 다다미방 등에서 맞춤형 훈련을 진행한다. 사진은 히로시마현 한 회복기 재활병동을 방문해 직접 촬영했다.
초고령 국가인 일본은 ‘회복기 재활병동(개호노인보호시설)’ 에 실제 가정집 형태(다다미방, 높낮이 조절 싱크대, 일본식 욕조 등)로 구현해 놓고 귀가 후 복귀를 돕고 있다. 의료진(작업치료사 등)은 퇴원 전 환자의 실제 자택을 직접 방문해 문턱, 계단, 화장실 환경을 점검하고 이에 맞춰 다다미방 등에서 맞춤형 훈련을 진행한다. 사진은 히로시마현 한 회복기 재활병동을 방문해 직접 촬영했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후기 고령자(75세 이상)가 크게 늘면서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방문진료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행정동별 연령별 인구현황에 따르면, 국내 75세 이상은 올해 9월말 현재 449만 6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8.8%, 65세 이상(1131만 3600명)의 39.7%를 차지하고 있다. 후기 고령자는 1인당 연간 의료비 지출이 전기 고령자(65~74세)에 비해 약 4배나 많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초고령사회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을 보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취약계층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의료와 돌봄의 중심을 이미 ‘병원’에서 ‘집(지역사회)’으로 전환했다. 일본은 주간보호 센터 및 방문 서비스를 적극 결합해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환자가 낯선 병원 응급실이 아닌 평생 살아온 정든 ‘다다미방(和室)’에서 평온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재택사(在宅死)’ 비율을 점진적으로 높여가고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일본의 사례는 의료 자원과 인력이 한정된 상황일 때, 취약한 고령층의 생존권을 보장하려면 시설중심 치료에서 벗어나 집으로 찾아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필수적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일본은 1986년 의료보험 체계 안에서 처음으로 방문진료 관련 개념과 수가가 도입됐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재택의료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1992년 재택의료가 정식으로 요양급여로 인정받으면서 입원과 외래에 이은 ‘제3의 의료’영역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일본 정부는 2006년 단카이세대(1947~49년생·1차 베이비부머)가 고령화되는 시점에 맞춰 ‘재택요양지원진료소’제도를 신설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인 ‘개호보험(介護保險)’과 연계한 방문 간호 및 재택의료 인프라를 대폭 강화했다. 즉, 일본은 급격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1980년대 중후반에 제도의 씨앗을 뿌리고, 1990년대 공식 체계를 다진 후,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규모 인프라와 지원 제도를 본격적으로 확장해 왔다.

일본 정부는 병원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문진료의 보상 가치를 확 높였다. 외래 환자 5명을 진료하는 것과 방문진료 1명을 담당하는 것의 수가(보상)를 비슷하게 맞춰 의료진의 참여를 적극 유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한 일회성 왕진이 아니라, 응급 상황이나 심야 호출에 대비해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체계를 갖춘 곳에 가산을 부여했다. 소규모 클리닉들이 연합하거나 대형 병원과 연계해 24시간 365일 공백 없는 돌봄 시스템을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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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현 함키타 의료생활 협동조합(생협 진료소) 의료진이 일본의 한 고령자 가정을 방문해 진료를 하고 있다. 이 진료소는 거동이 불편해 집안에 누워 있거나 통원 진료가 어려운 환자 분들을 대상으로 방문 진료를 시행하고 있으며 주로 뇌졸중, 신경 난병, 치매, 암, 휠체어 사용, 와병 등 스스로 병원에 가기 어려운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출처= 함기타의료생활협동조합 홈페이지
시즈오카현 함키타 의료생활 협동조합(생협 진료소) 의료진이 일본의 한 고령자 가정을 방문해 진료를 하고 있다. 이 진료소는 거동이 불편해 집안에 누워 있거나 통원 진료가 어려운 환자 분들을 대상으로 방문 진료를 시행하고 있으며 주로 뇌졸중, 신경 난병, 치매, 암, 휠체어 사용, 와병 등 스스로 병원에 가기 어려운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출처= 함기타의료생활협동조합 홈페이지


일본은 현재 지역포괄케어(한국의 커뮤니티 케어)시스템의 취지를 살려 전국 1만 2000여 곳 이상의 ‘방문간호 스테이션’을 활성화하여 의사 뿐만 아니라 간호사가 가정을 찾아가 주기적인 신체 평가, 욕창 관리, 호흡 재활 등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약사가 환자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복약지도와 약물관리를 하는 ‘방문약제관리’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다. 의사와 간호사, 약사가 ‘다학제 컨퍼런스(다직종 연계 협의)’를 열어 환자 상태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일본의 사례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병원에 억지로 모시고 가거나, 가족이 전적으로 간병을 떠안아 보호자와 환자 모두를 지치게 만든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건복지부는 동네 의원에서 치료·예방·건강관리·돌봄 연계를 묶어 제공하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시행한다. 이 시범사업은 올해(2026년) 7월 9일부터 8월 5일까지 참여기관 공모를 진행했으며, 674개 신청기관에 대한 평가를 거쳐 총 120개 의원이 선정됐다. 지난 9월 29일부터 시작된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은 약 3년간 환자의 건강 상태에 맞춘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질병 치료, 약물관리, 교육·상담, 방문진료·간호, 지역사회 돌봄 자원 연계 등을 제공한다.

이번 사업은 기존의 진료 건별 보상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환자에 대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관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학제 팀을 구성해 환자의 건강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필요에 따라 다양한 전문인력과 지역사회 서비스를 연계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등록 환자는 기존 진료와 동일한 수준의 본인부담금을 부담하며, 사업 참여에 따른 추가 비용은 없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의원급 의료기관만을 대상으로 사업이 설계되고 고령층이 선호하는 한의원 및 한의사들이 배제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국내 고령층의 상당수가 한방 의료에 높은 친화력과 선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칸막이식 제도 설계로 인해 환자들이 큰 불편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해외 주요 국가들이 전통의학을 지역돌봄의 핵심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과 비교할 때, 한국의 폐쇄적인 정책이 심각한 제도적 공백을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원 강점이 바로 고령층의 만성통증, 노인성 질환의 후유증 관리임을 모든 국민이 알고 있음에도 양방 의원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우리보다 고령화 문제를 먼저 겪은 일본, 싱가포르 등 이웃 국가들이 전통의학을 제도 안으로 포용해 환자 선택권을 넓히고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는 측면에서 한의사협회의 주장이 크게 틀리지 않다. 물론 한의계 참여가 모든 환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 환자의 질환과 상태에 따라 필요한 치료가 다르며, 응급질환이나 중증질환은 적절한 검사와 전문적인 의학적 처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한의학적 중재 역시 치료별 임상적 근거와 안전성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다른 의료진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은 의원 중심으로만 이뤄져 한의원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경로와 역할을 막아버렸다. 이 때문에 통합 재택의료·돌봄 사업 등에서 한의계를 충분히 포용하지 못하면서 구조적 부작용과 환자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먼저, 고령 환자의 치료 선택권 제한이다. 한국의 농어촌 및 도시 고령층 다수는 침, 뜸, 부항 및 한방 물리치료, 한방 체질 처방 등에 매우 친숙하고 치료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정부 사업에서 한의원이 배제되면서 환자들은 가까운 곳에서 익숙한 전통 방문진료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경제적·시간적 비용을 추가로 부담할 수 있다.

둘째, 만성질환 관리의 효율성 저하이다. 고령층의 근골격계 질환, 퇴행성 질환, 신경통 등은 장기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한의학적 방문진료와 통합 관리가 병행될 경우 통증 완화 및 진통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지만 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현장 적용이 막힐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의료 사각지대 심화이다. 거동이 불편해 집밖을 나오지 못하는 이른바 ‘홈바운드(Homebound)’노인들에게는 단 하나의 의료 채널이라도 아쉬운 상황이다. 한의사 인력과 자원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가뜩이나 부족한 방문진료 인프라의 심각한 국가적 자원 낭비로 이어질 수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한의계의 참여 가능성을 검토하는 별도의 시범사업이나 기존 사업과 연계된 실증 모델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보다 고령화 문제를 먼저 겪은 일본, 싱가포르 등 이웃 국가들이 전통의학을 제도 안으로 포용해 환자 선택권을 넓히고 의료 접근성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방문진료와 재택의료 현장에서 의사들이 현대 의학과 함께 캄포(漢方,한방약)를 적극 활용한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들이 호소하는 만성 통증, 식욕 부진, 냉증, 수면 장애 등 노인성 질환에 한방 처방이 병용되면서 환자의 삶의 질(QoL)이 크게 향상됐다(일본동양의학회 및 현장 보고). 국가가 제도를 통해 양·한방의 장점을 현장에서 통합 제공하기 때문에 환자는 집에서 편안하게 맞춤형 케어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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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싱가포르 쯔치(TzuChi)재단 의료진이 거동이 불편한(homebound) 환자의 가정을 방문해 진료 및 치료를 하고 있다. 출처= 쯔치재단 홈페이지
(사진) 싱가포르 쯔치(TzuChi)재단 의료진이 거동이 불편한(homebound) 환자의 가정을 방문해 진료 및 치료를 하고 있다. 출처= 쯔치재단 홈페이지


싱가포르 역시 초고령 사회를 맞아 전통 중의학(TCM)과 서양의학을 연계한 지역사회 건강관리 모델을 구축했다. 정부 주도의 통합 커뮤니티 케어 네트워크 속에서 노인들은 친숙한 전통의학 서비스를 공공 의료 체계와 연계해 이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의료비 절감과 높은 환자 만족도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다인종 국가(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의 특성을 반영해 전통의학(특히 중의학·TCM)을 제도적으로 공인하고 관리한다. 싱가포르는 ‘공공 클리닉(Polyclinic)’과 민간 1차 의료기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고령층 만성질환 관리를 수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친숙한 전통의학적 건강 관리 및 예방 프로그램이 지역사회 돌봄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운영되고 있다. 대형 병원과 소규모 동네 의원의 중간 단계인 ‘공공 클리닉’은 여러 분야의 전문 의사들이 한곳에 모여 다양한 진단, 치료 및 의료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종합 진료소(또는 보건소·공공 의료원 형태의 시설)를 말한다. 단일 질환이나 한 가지 진료과목만 다루는 일반 동네의원(Clinic)과 달리, 여러 과가 모여 있다는 뜻에서 ‘Poly(많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 국가에서 전통의학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고령화로 폭증하는 의료 수요를 분산하고 환자 중심의 돌봄을 완성하는 핵심 자원이다.

한방 등 전통의학이 지역사회 돌봄과 방문진료에 투입되었을 경우 임상적·사회적 장점은 다수의 학술 연구를 통해 입증되어 왔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고령층이 주로 겪는 퇴행성 관절염, 요통 등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전통의학 기반의 방문 관리(Home Care)는 통증 지수를 유의미하게 낮추고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개선하는 데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역사회 기반의 전통의학 방문진료 및 통합 중재 모델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급성 악화를 막고, 불필요한 대형 병원 입원이나 요양시설 입소율을 낮춰 국가 전체의 보건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이와 함께 친숙한 소통방식과 신체 접촉 중심의 돌봄(Touch-based care) 특성을 가진 전통의학은 환자의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고, 돌봄을 담당하는 가족들의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초고령화 시대의 의료 정책은 공급자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환자 편익과 치유’가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사례에서 보듯이 전통의학을 지역사회 통합돌봄에 조화롭게 녹여내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소모적인 직역 간 갈등을 조장하는 편협한 정책을 즉각 재고하고, 늦었지만 한의계를 지역사회 방문진료와 만성질환 관리 체계에 공식적으로 편입해야 한다. 환자가 가장 편안하게, 원하는 방식을 선택해 치료받을 수 있는 열린 제도가 마련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의료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병문 의학전문기자
세줄 요약
  • 초고령사회 진입과 재택의료 필요성 확대
  • 복지부 시범사업의 한의원 배제 논란
  • 일본·싱가포르 전통의학 포용 사례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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