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맥주 역사의 기연(奇緣)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수정 2026-10-13 03:51
입력 2026-10-13 01:04
이미지 확대


우리 맥주 산업 역사의 시작을 보려면 서울 영등포역에서 철길 건너 남동쪽에 있는 영등포 공원으로 가야 한다. 오비맥주 공장이 있던 자리엔 맥아와 홉을 끓이는 용도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담금솥이 있다.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나타나는 푸르지오 아파트단지는 하이트진로의 전신인 조선맥주 공장 터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소화기린맥주와 대일본맥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대형 맥주회사 두 곳은 1933년 경쟁적으로 영등포에 공장을 지었다. 조선맥주는 대일본맥주의 자회사였다. 두 일본업체는 1932년 만주국이 수립되자 한반도는 물론 만주 일대의 맥주 수요를 노렸다.

맥주를 수입한 기록은 대한제국 시대에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 1901년 6월 19일자 황성신문에는 일본의 ‘에비스맥주’ 광고가 실렸다. 이듬해 5월 19일자 같은 신문에는 ‘세계 각국에서 칭찬받는 상품’이라며 ‘궁내부 어용 혜비수(에비스) 맥주’ 선전도 보인다. ‘궁내부 어용’이라 했으니 황실에 납품했다는 뜻이다.

삿포로맥주의 삿포로맥주회사, 에비스맥주의 일본맥주양조회사, 아사히맥주의 오사카맥주회사는 1906년 통합해 대일본맥주가 됐다. 기린맥주는 외국인들이 만든 재팬 브루어리가 모태다. 1907년 일본자본이 재팬 브루어리를 인수해 오늘에 이른다. 대일본맥주는 1949년 다시 삿포로맥주와 아사히맥주로 분할됐다.

1939년 한 신문에는 ‘조선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는 삿포로와 기린’이라면서 ‘초여름부터 무섭게 나가더니 8월에는 재고가 동날 지경’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하이트진로가 ‘기린 이치방 시보리’ 캔맥주 생산을 시작했다는 뉴스가 어제 들렸다. 기린맥주라면 하이트진로의 전신 조선맥주의 경쟁상품이었으니 흥미롭다. 영등포공원의 담금솥 역시 소화기린맥주가 기린맥주를 만들던 시설이었다. 100년에 육박하는 우리 맥주 역사에 담겨야 할 내용이 아닐까 싶다.

서동철 논설위원
2026-10-13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