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창] CPTPP, 생존을 위한 선택 그리고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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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10-13 01:02
입력 2026-10-13 01:02
사마천 ‘사기’에 등장하는 ‘합종연횡’은 오늘날 국제 질서와 통상 환경을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전국시대, 진(秦)의 팽창에 위협을 느낀 여섯 나라는 힘을 합쳐 진나라에 맞서는 합종 전략을 펼쳤다. 이에 진나라는 각국과 개별적으로 손잡는 연횡 전략으로 대응했다. 여섯 나라는 불신과 이해관계 충돌을 극복하지 못했고, 진나라에 차례로 무너졌다.

2000년이 지난 현재 국제 통상 무대에서도 합종연횡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은 국제 질서의 상수가 됐다.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고, 관세는 경제안보의 무기로 등장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약화됐으며,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중동 전쟁을 거치면서 공급망 불안은 일상적인 위험이 됐다.

2018년 출범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은 ‘현대판 합종’이다. 선진 소비시장과 제조 강국, 자원 부국 등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국가들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통상 환경을 위해 구축한 협력체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넘어 통상 규범을 함께 만들고 공급망과 경제협력 기반을 넓혀 가는 전략적 연대다.

한국의 내수 시장은 세계 시장의 2%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세계 시장을 넓혀 60개국과 23건의 FTA를 체결했고, 전 세계 명목 GDP의 85%에 달하는 시장과 자유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세계 4대 수출 강국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개방·통상은 우리 경제의 성장 전략이자 생존 전략이었다.

통상 주무 장관으로서 CPTPP 가입은 선택의 문제를 넘어 급변하는 통상 질서 속에서 시장과 공급망을 지키고 미래 산업의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생존이 걸린 과제라고 생각한다. 회원국이 늘고 규범이 축적될수록 후발 가입국의 협상력은 줄어든다. 우리 국익을 지키고 농림수산업 등 민감 분야의 이익을 최대한 지켜내기 위해서도 가입 논의를 마냥 미룰 수 없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개방 경제 성과는 우리 사회에 고르게 돌아가지 못했다. 수출·산업의 성장 이면에는 개방으로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농림어업인들이 있었다. 정부는 지원·보상을 약속했지만 현장에서는 불신이 쌓여 왔다. 그 불신은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우려이며 정부가 책임 있게 마주해야 할 과제다.

지난 8월 CPTPP 가입 추진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시작한 이후, 정부는 업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해 왔다. 농림어업계는 추가 개방이 가져올 피해를 우려하며 추진 중단을 요구했고 깊어진 불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소통을 멈출 순 없다. 농림어업인들이 우려하는 피해가 무엇인지 살피고, 실효성 있는 보호 대책과 경쟁력 강화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 과거 약속이 왜 충분히 이행되지 못했는지 돌아보고, 이번에는 약속이 지켜질 거라는 믿음도 줘야 한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라면 부담을 떠안는 국민의 삶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 개방 성과가 지속되고, 통상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CPTPP 가입 논의를 시작하면서 농림어업계·산업계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겠다고 약속했다. 그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CPTPP 가입은 한국의 미래를 위한 길이어야 한다. 농림어업인과 국민 모두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이 쌓일 때까지 듣고 설명하고 대안을 찾겠다. 서두르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원칙을 지키되 현장에 귀 기울이겠다. 국가 생존을 위한 선택이 국민 신뢰 위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끝까지 소통하겠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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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2026-10-1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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