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더 세게… 제재 실적이 곧 성과인 공정위 [무소불위 不공정위]

박기석 기자
수정 2026-10-13 00:55
입력 2026-10-13 00:55
2회 제재 만능주의의 덫
최다 과징금 때리면 ‘올해의 공정인상’… 승진 고속도로 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 담합과 사익편취·부당지원 사건의 처리 건수에 목표치를 설정하고 시정명령 이상의 처분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행정소송 패소 리스크 속에서도 과징금 제재 수위를 높이는 배경에 적극행정으로 포장된 ‘실적쌓기’가 있다는 의미다. 제재 실적은 곧 인사 가점을 통한 ‘승진’으로 연결된다. 공직 사회에 깊게 박힌 성과 만능주의가 근절되지 않는 한 공정위 ‘과잉제재’의 굴레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공정위의 ‘2025년도 성과관리 시행계획’에는 대형 제재 사건과 관련한 정량 성과 지표가 여럿 포함돼 있다. 조치 유형에 따라 시정명령 이상 안건 상정은 1, 경고는 0.6, 무혐의는 0.4의 가중치를 부여해 실적을 계산한다. 시정명령 이상 사건 한 건이 경고 사건보다 약 1.7배, 무혐의 사건보다 2.5배 높은 실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2025년 담합 사건 처리 건수의 목표치는 85건이다.
공정위는 12일 “최근 3년간 실적 평균인 82건보다 약 3% 높은 수준으로 목표를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부당지원 행위에 대한 목표치는 8.8건으로, 최근 3년 평균 실적인 8.03건보다 약 10% 높게 설정했다. 사건 처리 실적은 안건 상정 1, 경고 0.5, 심사 절차 종료·무혐의 0.3의 가중치를 적용해 산정한다. 행정소송 패소로 제재가 뒤집혀도 감점은 없다.
이처럼 제재의 강도가 셀수록 큰 성과로 인정받고, 소송에서 패소해도 불이익이 없는 평가 방식이 공정위의 ‘제재 일변도’ 행정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공정위 소속 공무원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올해의 공정인상’도 제재 수위를 높이는 데 동기를 부여한다. 공정위 위상을 높인 직원을 선발·포상하는 제도인데, 통상 그해 가장 많은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 성공한 직원이 받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의 특허 남용 행위에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 1조 311억원을 부과한 직원은 2017년에, 행정소송에서 2심 승소를 이끈 직원은 2019년에 각각 공정인상을 받았다. 2024년에는 쿠팡의 검색 순위 조작에 과징금 1628억원을 부과한 직원이, 지난해에는 구글의 유튜브뮤직 끼워 팔기 동의의결로 상생기금 300억원을 받아 낸 직원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공정위의 공정인상 운영지침에 따르면 최우수상 수상자는 인사 가점 0.1점을 받는다. 공무원 인사고과나 승진 평가는 통상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순위가 갈린다는 점에서 0.1점은 5명 안팎을 제치고 그해 승진 배수에 포함될지 여부를 결정짓는 정도의 변별력을 가진 점수라 할 수 있다.
올해 도입된 ‘특별성과 포상금’도 제재 성과에 대한 보상이다. 공정위는 지난 4월 설탕 담합을 적발한 직원 2명에게 1500만원을 지급하는 등 4개 과제에 총 3200만원을 포상했다. 7월에는 밀가루·은행 담보인정비율(LTV) 담합과 인쇄용지 담합 등을 적발한 직원에게 총 2100만원을 지급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조직과 인력이 대폭 늘어난 점도 ‘제재 성과’ 압박을 키우는 요인이다. 현재 공정위 정원은 기존 647명에서 1052명으로 405명(62.6%) 불어났다. 거의 중앙정부 부처와 맞먹는 규모다. 공정위의 인력을 늘린 건 성과를 내라는 의미이고, 공정위에 성과는 곧 제재를 의미한다.
공정위 심사관은 조사 대상 기업 측과 법리 다툼을 위해 1심 격인 전원회의에 나설 때 “전쟁터에 나간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봐주는 것 절대 없다”고 말한다. 공소장 격인 심사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확실한 서면 증거가 부족해도 어떻게든 기업 측의 혐의를 부풀린다. 전원회의 심의에서 제재가 완화되면 ‘적극행정’ 차원이라고 한다. 일단 과잉 제재를 내려도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는 의미다.
공무원 특유의 보신주의도 고강도 제재를 부추긴다. 한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공정위 입장에서는 제재를 약하게 했다가 봐주기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살아남으려면 강하게 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박기석 기자
세줄 요약
- 담합·사익편취 사건에 목표치 설정
- 시정명령 이상 처분에 높은 가중치
- 과징금 실적이 인사·승진과 연결
2026-10-1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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