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도시의 삶을 노래하다…수민 “남이 바라는 나보다,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
김임훈 기자
수정 2026-10-12 15:26
입력 2026-10-12 15:26
세줄 요약
- 8년 만의 솔로 2집 ‘디너모드’ 발표
- 퇴근 후 도시의 감정과 자기 발견 조명
- 타이틀곡 ‘+82’로 남의 기대에서 이탈
퇴근길 도시의 소음을 뒤로하고 집 문을 닫아걸면 낮 동안 미처 살피지 못했던 사적인 감정이 비로소 고개를 든다. 세상이 요구하는 역할에 성실히 응하느라 바깥에 두고 온 마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격정이 치솟는 깊은 밤이나 새벽과는 사뭇 다르다. 집에 막 들어와 하루의 침묵을 곱씹는 그 순간을 수민은 노래한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기획사 스탠다드프렌즈 회의실에서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수민을 만났다. 2018년 첫 정규 ‘유어 홈’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솔로 정규 2집 ‘디너모드’에 대해 그는 “누군가에게 제 세계를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그 안에 잠시 들어와 있도록 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민은 작사·작곡·편곡과 보컬, 사운드 전반을 스스로 조율하는 전방위 창작자다. 첫 앨범 수록곡 ‘너네 집’과 슬롬과의 협업작 ‘미니시리즈 2’로 한국대중음악상을 두 차례 받았다. 에스파의 메가 히트곡 ‘아마겟돈’을 비롯해 방탄소년단(BTS), 보아, 아이유 등 K팝 최정상 곡 작업으로 주류 산업에서도 걸출한 역량을 입증했다. 그는 “예산 부족으로 직접 믹싱을 도맡던 초기를 지나 K팝 작업으로 확보한 경제적 여유가 자유도 확보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정규 2집 ‘디너모드’…도시의 밤을 그리다
일상과 맞닿은 생각들을 모아 작업 프로그램을 켜고 몰두한 기간이 1년 남짓이다. 가장 먼저 완성돼 앨범 중심을 잡은 타이틀곡 ‘+82’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보여준다. 한국의 국가 번호를 제목으로 삼은 이 곡은 서울을 살아가는 한 여성의 솔직한 자화상이다.
“누군가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왜 그렇게까지 상대에 대한 기대에 성실했었을까 싶기도 해요. 이제는 그 시절의 저를 조금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내가 나이 들고 있구나 느끼기도 했어요. 그래서 ‘+82’는 단순히 욕망에 솔직한 노래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 속에서 살던 여자가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노래예요.”
8년 만에 홀로 내는 정규 앨범에 대한 걱정도 작지 않았다. 수민은 “지난 8월 앨범을 내고 2달쯤 지나서야 평단의 코멘트를 접했다”며 “저 혼자의 ‘순수 체급’으로 콘서트를 꾸려야 한다는 부담에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일부러 평을 보려 하지 않았다. 너무 거기에 머무르게 될까 걱정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의 우려와 달리 평단에서는 호평이 쏟아졌다. 흑인음악 매거진 리드머는 지난 8월 30일 디너모드에 평점 4점을 부여했다. 리드머는 “한국 흑인음악 씬에서 이처럼 탄탄한 디스코그래피를 꾸준히 쌓아온 아티스트는 수민이 유일하다”며 “탄탄한 가창력뿐만 아니라 곡마다 화자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능력도 뛰어나 어떤 스타일에서도 자연스럽게 몰입을 이끈다”고 평했다. 대중음악 웹진 이즘은 지난 3일 디너모드에 별점 3.5점을 부여하며 “일상과 상상의 중간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며 크레딧을 자신의 이름으로 가득 채운 자신감을 증명한다”고 했다.
수민은 지난달 18~20일 단독 콘서트에서 새 앨범 수록 9곡을 순서 그대로 불렀다. 마지막 트랙 ‘침몰’에 이르기까지 감정이 켜켜이 쌓이는 서사를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침몰’은 타이틀에 준할 만큼 강렬한 곡이라 반드시 이 전개가 필요했다”며 “앞선 상처와 피로를 모두 끌어안고 ‘네가 지옥이라면 기꺼이 함께 침몰하겠다’는 결연한 헌신을 노래했다”고 설명했다.
“섹슈얼리티는 관계를 드러내는 음악적 장치”
수민의 음악은 날것의 감정을 배설하는 태도와 거리를 둔다. 그는 “겪은 일을 그대로 쓰면 수필에 가깝지만, 가사는 사람들에게 보여야 하는 것”이라며 “모나고 거북했던 기억마저 치열하게 편집해 청자가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는 선을 찾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음악이 얌전해진 것은 아니다. 수록곡 ‘그냥’처럼 무력감을 가사로 표현하면서도 강렬한 클럽 튠으로 몰아치는 식이다. 수민은 “가사와 사운드를 서로 대비시켜 이질적인 감정을 부딪치게 만드는 작업을 선호한다”고 했다.
수민의 노래는 감각적이고 때로는 섹슈얼하다. 슬롬과의 합작 앨범 ‘미니시리즈’의 타이틀곡 ‘곤란한 노래’, 자이언티와의 협업곡 ‘크림빵’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그는 “섹슈얼리티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언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섹슈얼한 분위기는 저한테 장치에 가까워요. 누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지, 누가 상대방을 의식하고 있는지, 말과 행동이 얼마나 다른지를 표현하려는 의도가 더 앞에 있어요. 가끔은 귀엽고 위트 있는 소리로 짓궂은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고, 반대로 관능적인 사운드 안에 굉장히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해요.”
그는 인디와 대중음악을 인위적으로 가르지 않는다. 백 명 앞이든 수천 명 앞이든 노래의 본질은 누군가에게 가닿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중예술도 그냥 예술”이라며 인디라는 이름 뒤에 숨는 태도를 경계했다.
“‘나는 인디 뮤지션이니까 덜 알려져도 당연하다’고 말하는 건 변명 같아요. 인디 뮤지션이라는 틀에 머물기보다 그냥 온전한 뮤지션으로서 솔직해지고 싶거든요. 설령 내 음악이 가닿지 못하더라도 ‘인디라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가가려 손을 뻗었지만 닿지 못한 것으로 정직하게 인정해야죠.”
김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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