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재판 전 공소장부터 공개하는 격… 법리 다툼도 전에 유죄 굴레 [무소불위 不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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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우 기자
수정 2026-10-12 01:34
입력 2026-10-11 23:29

‘기소 전 피의사실 공표’ 논란

심의 없이 심사보고서 외부 유출
올해 44조 유가담합 등 18건 발표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의 법 위반 여부를 심판하는 1심 격인 ‘전원회의’나 ‘소회의’를 열기 전에 공소장에 해당하는 ‘심사보고서’ 내용을 브리핑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재판에서 법리 다툼을 해 보기도 전에 ‘위법 기업’으로 낙인을 찍어 버리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 2월 밀가루 담합 사건을 시작으로 11일 현재까지 심사보고서 송부 사실을 총 18건 공개했다. 심사보고서는 기업의 위법 사항에 대한 공정위 심사관의 조사 결과와 제재 의견이 담긴 문건이다. 이를 기업에 발송하고 위원회에 상정했다는 건 공정위가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는 의미다.

문제는 공정위가 공개하는 기업의 위법 행위가 최종 확정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공정위는 지난 7일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의 유가 담합 규모가 44조 1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대한 위반 행위’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향후 심의에서 담합 규모가 줄어들 수 있고 과징금이 취소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두 기업도 “교환된 가격 정보는 이미 시장에 공개돼 있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이므로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심사보고서 내용을 공개하면서 두 기업은 법리 다툼을 해 보기도 전에 이미 전쟁을 틈타 유가를 담합해 잇속을 챙긴 기업처럼 돼 버렸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를 공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피심인은 심사보고서 수령일로부터 8주 이내에 서면 의견 제출, 증거자료의 열람·복사 신청 등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핵심 내용인 위법 행위와 제재 의견을 다 공개해 놓고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말장난”이라면서 “공정위의 여론전에 대한 방어권을 어떻게 보장받나”라고 반박했다.

심사보고서 공개 기준을 놓고도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정위는 공익적 측면에서 공개할 필요성이 있는 사건에 한해 심사보고서 송부 사실을 공개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최종 결론 나지 않은 단순 조사 결과를 왜 공익 운운하며 공개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공정위가 지난 2월 포스코이앤씨 등 4개 건설사의 산업안전 관련 부당특약 설정 행위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공개한 것을 두고선 “국민이 꼭 알아야 할 내용도 아니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심사보고서 발송 사실 공개를 놓고 공정위 내부에서도 반론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대외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또 피심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공개하지 않았던 것을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공개하는 건 논리가 빈약하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과 상임위원에 이어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을 지낸 김형배 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도 “심사보고서는 공정위 사무처가 작성한 일방적인 의견서일 뿐 위원회의 최종 판단이 아니다”라며 “조사 대상 기업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 김신우 기자
세줄 요약
  • 본 심의 전 심사보고서 송부 사실 공개 논란
  • 기업 위법 낙인과 여론전 우려 확산
  • 공정위는 방어권 보장 주장으로 맞대응
2026-10-1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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