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삼성 공동 기획] 공유오피스 된 軍훈련소… 창업이 머물고 ‘마을 호텔’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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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언 기자
수정 2026-09-17 19:44
입력 2026-09-17 17:41

[청년, 지역의 내일을 만들다] 체류·관계 중심 청년마을

경남 고성 ‘㈜바다공룡’
발리서 개발자 일하던 최보연 대표
소도시 ‘마을 호텔’ 플랫폼 만들고
로컬 콘텐츠 개발… 자립 정착 목표

부산 동구 ‘이바구 플랫폼’
‘초량168계단’ 주변 청년 상점 밀집
러닝 행사 등 통해 교통 악재 극복
이유한 대표 “창업 진입 장벽 낮춰”
지역소멸 위기 속 청년을 지역으로 이끄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단순 지원금이나 일자리 제공을 넘어, 청년이 지역에 머물며 일과 공간을 기획하고 지역 자원을 기회로 연결하는 ‘체류·관계 중심’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는 이러한 모델의 대표 사업이다. 2018년 전남 목포 ‘괜찮아마을’을 시작으로 전국 61곳이 선정됐으며 작년 말 기준 260명이 정착하고 21만여명의 청년 생활인구가 유입되는 성과가 났다.

경남 고성에서도 청년 주도의 ‘체류·관계 중심’ 실험이 속도를 내고 있다. 17일 고성군에 따르면 지역의 청년기업 ㈜바다공룡이 올해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에 선정돼 3년간 국비 최대 6억원을 지원받는다. 빈집과 전통시장 유휴 점포를 활용해 청년 거점 공간을 만들고, 공룡 캐릭터와 가리비·쌀 등 자원을 결합한 로컬 콘텐츠를 개발해 자립형 정착 모델을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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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 청년기업 바다공룡의 최보연(왼쪽) 대표와 강명훈 팀원이 대가면의 옛 예비군 훈련소를 리모델링한 공유오피스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바다공룡 제공
경남 고성 청년기업 바다공룡의 최보연(왼쪽) 대표와 강명훈 팀원이 대가면의 옛 예비군 훈련소를 리모델링한 공유오피스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바다공룡 제공


그 중심에는 서울 출신 컴퓨터공학도이자 ‘디지털 노마드’였던 최보연(35) 대표가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블록체인 개발자로 일하다 코로나19로 귀국한 그는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다 지역소멸을 개인의 삶과 직결된 문제로 받아들이게 됐다. 최 대표는 “의령 체류 시절 가까이 지내던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신 뒤 빈집에 남은 유품과 줄어드는 가구 수를 보며 지역소멸을 깊이 체감했다”고 돌이켰다. 그는 2022년 8월 바다공룡을 창업하며 고성에 정착했다. 옛 예비군 훈련소를 개조한 공유오피스로 시작한 사업은 빈집을 체류형 숙소로 바꾼 ‘마을호텔’로 확장됐다. 현재 직영·위탁 공간 10곳을 운영하며 소도시 마을호텔 플랫폼 ‘욜로케이션’을 통해 숙박 예약과 지역 소식도 제공하고 있다.

이 공간들은 외지 청년과 지역 청년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다. 정보통신(IT) 개발자나 작가 등이 고성에 머물며 창업·작업을 시작하도록 돕고, 지역 청년이 운영하는 막걸리 빚기·테라리움·윈드서핑 등 체험 프로그램과 연계해 상생 구조를 만들었다. 기존 사업으로 구축한 ‘거점 공간’과 ‘네트워크’를 마을 전체 생태계로 확장하는 단계가 이번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청년들이 지역 자원을 활용해 지속 가능한 ‘일’을 기획하도록 판을 키운 셈이다.

최 대표는 “체류가 정착으로 이어지려면 지속 가능한 ‘일’이 있어야 한다”며 “서울에서 온 청년과 고성에서 사업을 시작한 청년을 연결해 서로의 일과 콘텐츠가 새 기회를 만들도록 돕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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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공룡이 진행하는 ‘패키지 지역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요가 체험 모습. 마을호텔 혹은 공유오피스를 예약할 때 함께 신청할 수 있다. 바다공룡은 지역을 직접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바다공룡 제공
바다공룡이 진행하는 ‘패키지 지역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요가 체험 모습. 마을호텔 혹은 공유오피스를 예약할 때 함께 신청할 수 있다. 바다공룡은 지역을 직접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바다공룡 제공


바다공룡의 청년마을 사업 명칭은 ‘디노-영오연구(DINO-0509)’다. 영오면을 거점으로 사람과 공간, 아이디어를 함께 탐구하겠다는 의미다. 고성 농수산물과 공룡 지식재산(IP)에 청년의 기획·디자인을 접목해 로컬 상품을 개발하고 영오시장 빈 점포를 청년 자립 거점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최 대표는 “사람과 일을 연결해 함께 성장하는 마을을 지향한다”며 “청년 유입을 위해서는 행정이 정해 놓은 사업을 대행하게 하기보다 청년에게 기획하고 실행할 권한을 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의 경험은 다음 일로 이어질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구 감소지역인 부산 동구 산복도로 한 자락에는 청년들이 가꾸는 마을, ‘이바구 플랫폼’이 있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놓인 경사형 엘리베이터 ‘초량168계단 하늘길’ 주변으로 청년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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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업자들이 운영하는 업체가 모여 있는 부산 동구 이바구 플랫폼 전경. 공공플랜 제공
청년 창업자들이 운영하는 업체가 모여 있는 부산 동구 이바구 플랫폼 전경.
공공플랜 제공


이바구 플랫폼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조성한 거점과 빈집 등 유휴공간을 청년 창업 공간으로 단장하면서 탄생했다. 현재 사회적기업 공공플랜이 동구청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창업 문턱을 낮춰 청년의 정착을 돕는 게 목표다.

이유한 공공플랜 대표는 “대규모 고용 기업을 당장 만들 수는 없으니 창업 진입장벽을 낮춰 청년이 살아갈 수 있게 하자고 생각했다”며 “부산 청년 창업공간 대부분이 IT·온라인 플랫폼 운영자를 위한 공유오피스 형태다. 이바구 플랫폼은 청년이 자신만의 색을 녹여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로우 테크’ 창업으로도 성장하는 기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주 청년에게는 창업 컨설팅과 시제품 제작, 홍보 등이 지원되며 임대료는 월 10만~40만원 수준이다. 2년에 한 번 새로 선발하며 대표자를 포함해 구성원 절반 이상이 청년이어야 한다.

현재 식당과 카페 등 식음료 업체와 주얼리 공방 등이 운영 중이다. 대중교통과 주차장이 없는 산허리에 있지만 청년들은 협업하며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 산복도로 풍광을 즐기는 러닝 프로그램을 만들고, 카페와 공방이 함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식이다. 이바구 플랫폼에서 독립한 사진관은 가맹점 10곳을 둔 프랜차이즈로 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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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구플랫폼에 있는 야외 복합문화공간 ‘168더데크’에서 지난해 9월 청년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다. 공공플랜 제공
이바구플랫폼에 있는 야외 복합문화공간 ‘168더데크’에서 지난해 9월 청년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다.
공공플랜 제공


이 대표는 “이바구 플랫폼에 모인 청년 각자가 로컬 브랜드로 성장해 꼭 수도권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지역에서 청년이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청년마을 만들기’와 같은 시도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이어진다. 경남 하동군은 옛 하동역 부지를 청년 창업·교류 공간으로 개편했고, 합천군은 청년주택과 센터를 연계한 90가구 규모의 ‘청년활력타운’ 조성을 추진 중이다. ‘전남형 만원주택’처럼 정착 기반 마련에 힘을 싣는 사업도 있다.

청년마을 등의 사업이 청년층 유입에 이바지했다는 평가 뒤에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원주민과 접점을 찾지 못한 청년들의 고립, 지원금이 끊기면 다른 지역으로 이탈하는 현상, 제한된 시장에서의 수익성 한계 등이다.

전문가들은 성공 사례를 일반 청년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별한 선진 사례를 일반 청년에게 그대로 이식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한국의 높은 도시화율을 고려하면 소규모 사업에 그치지 않고 ‘뉴타운’ 조성에 준하는 규모로 인프라를 키워 최소한의 정주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3년 단위의 단기 공모·평가 중심 정책을 개편해 실패를 자산으로 품는 장기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간지원조직과 지역 대학·기관이 축이 되는 인프라 구축 역시 과제로 꼽힌다.

고성 이창언·부산 정철욱 기자
세줄 요약
  • 청년 체류·관계 중심 지역정착 모델 확산
  • 고성 바다공룡, 빈집·훈련소를 창업 거점화
  • 부산 이바구 플랫폼, 로컬 창업 생태계 조성
2026-09-1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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