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안부 묻는 한 끼의 힘… 밀키트로 ‘돌봄 공백’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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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기자
이현정 기자
수정 2026-09-10 00:43
입력 2026-09-10 00:43

온정을 배달하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사가 밀키트 들고 방문
식생활·건강·주거 위기까지 살펴
지금까지 176명 맞춤형 돌봄 제공
지자체 복지망 연결해 통합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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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성동구에서 이아름 사회복지사가 어르신에게 식재료를 전달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성동구에서 이아름 사회복지사가 어르신에게 식재료를 전달하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 뒷골목. 경차가 대로를 벗어나 비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늘은 그래도 덜한 편이에요. 한여름엔 숨쉬기조차 힘들거든요.”

뒷좌석에는 이날 여덟 가구에 전할 청국장 밀키트와 방울토마토가 실려 있었다. 이아름 서울시 성동구 재가 노인복지기관 사회복지사를 따라 고산자로와 살곶이길, 동일로, 송정길, 뚝섬로 일대를 돌았다. 번화가에서 골목 하나만 꺾어 들어가도 딴 세상이 펼쳐졌다.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 끝에는 방 한 칸, 부엌 한 칸짜리 작은 집들이 숨어 있었다.

첫 목적지는 홀로 사는 70대 이모 씨의 집이었다. 이 씨는 사흘째 휴대전화를 꺼둔 상태였다. 문을 열자 발 디딜 틈 없이 쌓인 물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사회복지사는 밀키트를 건넨 뒤 한동안 집 안을 살폈다.

“주거 환경 정리가 시급해 주민센터에 의뢰해야겠어요.” 한 끼를 전하러 왔다가 집 안 정리에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 배달은 법정 전문 모금·배분 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가 지원하는 ‘재가 어르신 돌봄 공백 제로(Zero)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어르신들에게 고기와 과일 등 신선식품부터 밀키트 같은 간편조리식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서울시 성동구 재가 노인복지기관은 성동구청과 동주민센터, 보건소, 복지기관의 서비스를 조사해 데이터베이스(DB)와 자원지도를 만들었다. 이어 기존 사례관리 대상자와 동주민센터가 추천한 60세 이상 어르신을 직접 찾아가 건강과 식생활, 주거 환경을 살폈다. 조사 결과를 놓고 통합돌봄 지원 회의를 열어 기존 공적 서비스로 채우지 못한 부분을 확인하고 영양 관리와 퇴원 환자식, 비급여 의료비 지원을 연결했다.

총사업비 9470만원. 지금까지 지원받은 어르신은 176명이다. 영양 관리 570회, 퇴원 환자식 420회, 비급여 의료비 69회 등 총 1059회의 틈새 돌봄이 이뤄졌다.

어르신마다 필요한 도움은 달랐다. 유모(85) 씨는 1년 전 넘어져 다리를 다친 뒤 집 밖에 거의 나가지 못했다.

“장을 어디로 보러 가. 바깥에 나갈 수가 없어. 그냥 김치 씻어서 먹었지.”

밥을 해놓고도 입맛이 없으면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유 씨는 “밀키트로 음식을 해 먹으면 다음 날 점심까지 든든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간암을 앓던 큰아들을 살리려 가진 돈을 모두 썼지만 결국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다른 자녀들과는 연락이 끊겼는데도 자녀의 소득과 재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아들 살리겠다고 돈 다 썼는데 사람은 가고 빈털터리만 남았어. 자식 있어 봐야 남이야.”

집주인은 재개발을 앞두고 유 씨에게 퇴거까지 통보했다. 식사와 건강 문제에 가족관계 단절, 주거 불안까지 겹쳤다. 유 씨는 사회복지사의 방문 조사를 거쳐 새로 지원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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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대 어머니를 살피는 딸 강모씨와 이 사회복지사.
90대 어머니를 살피는 딸 강모씨와 이 사회복지사.


식단 조절이 필요한 어르신에게는 맞춤형 돌봄이 필요했다. 90대 노모를 돌보는 딸 강모(60) 씨는 “재료가 정갈하게 손질돼 오는 밀키트는 양념을 조절해 끓일 수 있어 훨씬 낫다”며 “이 지원이 끊기면 어쩌나 늘 조마조마하다”고 털어놨다.

강 씨의 어머니는 뇌전증과 치매, 당뇨를 앓고 있다. 강 씨도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지만 어머니 곁을 오래 비우기 어렵다. 어머니 왕진에 든 비급여 의료비도 이 사업을 통해 지원받았다. 강 씨는 왕진 치료 이후 심하게 부었던 어머니의 다리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고 전했다.

이 사회복지사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어르신들의 욕구를 조사한 결과 식생활과 의료 분야의 공백이 가장 많이 확인됐다”며 “밀키트를 전달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돌봄의 일부”라고 말했다.

사회복지사는 어르신의 얼굴빛과 목소리, 집 안 상태를 살펴 일지에 꼼꼼히 기록하고 동주민센터 담당자와 공유한다. 거의 누워 지내면서도 환자식 지원을 받지 못하던 어르신을 찾아내 주민센터에 긴급 의뢰한 적도 있었다.

유승연 서울시 성동구 재가 노인복지기관 관장은 돌봄 공백이 단지 자원 부족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짚었다.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이 제각각 사업을 운영하고 서비스를 서로 연결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어떤 지원이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 관장은 “서류상으로는 자녀가 있거나 집을 가진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집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어르신이 많다”며 “이런 분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통합돌봄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여덟 가구를 모두 돌아보는 데는 3시간가량 걸렸다. 한 집에 머문 시간은 10분 남짓. 짧은 방문이었지만 사회복지사는 어르신의 식사와 건강, 생활의 변화를 세심히 살폈다. 보랭 백에 담긴 밀키트는 어르신의 속을 덥힐 한 끼이자, 고립된 방 안으로 건네는 세상의 안부였다.

공동 기획 - 서울신문, 사랑의열매

글·사진 이현정 기자
세줄 요약
  • 밀키트 전달하며 어르신 안부와 식생활 점검
  • 주거·건강 위기까지 살피는 방문형 돌봄
  • 공공·민간 연계로 176명 맞춤 지원
2026-09-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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