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더 사랑하기 위해 죽음의 방식 치열하게 논의해야” [월요인터뷰]

김희리 기자
수정 2026-09-27 17:26
입력 2026-09-27 17:26
[묻고 답하고 통하다] ‘법의학자’ 유성호 서울대 의대 교수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고통 없는 마무리 스스로 선택해야
가족에게 책임과 부담 지워선 안 돼
‘의료인조력자살’ 신중히 논의할 때한국 사회에서의 죽음
남에게 말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워
자살, 개인 문제로 보면 해결 못 해
강력 사건, 수사기관 3중 확인 필요매년 유언을 쓰는 이유
친구 죽음 마주하며 한동안 ‘죄책감’
연말이 되면 나를 돌아보며 유언 써
가족에게 ‘사랑하고 고맙다’ 말 남겨36만 2968명. 지난해 우리나라의 사망자 수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1983년 이후로 두번째로 많은 수치다. 가장 많았던 해는 코로나19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2022년이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망자 수는 앞으로도 증가 추세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건강한 시대이면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오늘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금기시된다. 지난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의대 강의실에서 만난 법의학자 유성호(54) 교수는 “우리는 흔히 죽음을 병원이라는 공간에 격리하고 외면하지만, 사(死)는 생(生)의 연장선이자 마침표”라며 죽음을 올바르게 마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며 죽음이 우리 모두의 당면 과제가 된 지금이야말로 여러 죽음의 양상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긴 시간 지근거리에서 죽음을 목도해온 법의학자로서, 자살부터 존엄사까지 민감한 소재를 넘나드는 그의 시선이 다다른 목적지는, 결국 삶과 사람을 향한 애정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도준석 전문기자
-‘죽음’이란 화두를 양지로 끌어냈다고 평가받는데. 왜 죽음을 이야기하나.
“결국은 생을 말하기 위해서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우리가 제대로 자각할 때 삶의 가치도 비로소 실감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에 다니고, 여가를 즐기는 것은 언젠가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영원히 산다면 다 부질없는 일 아니겠나. 지금도 ‘백세시대’가 모두의 염원이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오래 살까에 혈안이 돼 있다. 생의 ‘연장’은 중요하다. 하지만 길어진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결국 끝은 온다면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할지를 죽음이란 키워드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잘 죽는 것’(웰다잉)이란 무엇일까.
“질환으로 사망할 경우 통상 2주 이상은 혼수상태로 누워있게 된다. 아마 그 사이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순간이 있을 거다. 그때 ‘이만하면 괜찮았다’라는 생각만 들어도 좋은 마무리가 아닐까. 또 내가 무엇을 남길 수 있는 죽음이어야 한다. 거창한 업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지를 의미한다. 결국 내가 어떤 삶의 궤적을 살아왔느냐가 웰다잉의 조건이다.”
-그럼에도 죽음의 순간은 고통스러울 것 같다.
“가장 현실적인 웰다잉의 조건은 고통 없는 마무리다. 대부분 죽음을 목전에 두면 매우 고통스럽다. 사망 직전에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면 의료진이 지속 여부를 가족에게 묻는다. 그럼 가족들이 그 선택을 하며 슬픔에 몸부림치고, 이후까지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CPR 중단은 곧 사망을 의미하니까. 고인의 마지막을 가족이 선택하게 종용하는 셈인 거다. 또 응급실 차가운 침대에서 대기하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사실 이런 마지막을 맞이하게 둬서도, 가족들에게 책임과 부담을 지워서도 안 된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편안하게 모르핀을 실컷 맞으면서 임종하고 싶은 게 고인의 뜻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고인에게 받아둘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소극적인 의미의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밝히는 수준이다. 조심스럽지만 이제 우리 사회도 의료인조력자살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존엄사를 찬성하는 입장인가.
“찬반 의견을 말하는 게 아니다. 죽음의 방식에 대해 우리 사회가 치열하게 토론을 해볼 시점이 됐단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1955년생만 70만명 넘게 태어났다. 지금 70대 초반이니 건강하지만 10~15년만 지나도 본격적으로 고령 인구의 질환과 죽음이 사회적 문제가 될 거고, 큰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거다. 연명의료결정제도 도입도 김 할머니 사건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9년이 걸렸다. 우리 사회가 죽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죽음을 개인이 선택하게 될 경우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큰데.
“맞다. 그렇기에 그 기준과 원칙, 필요성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단 거다.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선이 있을 거다. 캐나다에선 미성년자, 초기치매환자, 마약중독자까지도 의료인조력자살을 허용해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반면 스위스에선 장기간 극심한 고통을 받았는지 등을 의료진이 엄격하게 점검하고, 미국 오리건주에선 기대수명이 6개월 이내인 환자에 한해 의료진과 충분한 상담을 거친 뒤 경구약을 처방해주되, 복용 여부는 마지막까지 본인의 선택에 맡긴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의 특징이 있다면.
“죽음을 ‘개인화’한다는 거다. 죽음을 지극히 내밀한 영역으로 치부하고 이에 대해 타인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문화다. 일례로 우리나라 사망 원인의 5위가 자살이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여러 구조적, 문화적 요인이 겹쳐있다. 그럼에도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한 근본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 죽음이 무조건 거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해도 ‘이렇게 빨리 죽음에 이를 필요는 없었는데’하는 죽음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수십년간 법의학 현장에서 일하며 기억에 남는 사건은.
“하마터면 억울하게 묻힐 뻔한 죽음의 진실을 밝힌 사건들이 아무래도 오래 남는다. 몇년 전 결혼을 약속한 남녀가 함께 잠을 자다 여성이 사망했다. 평소 심장이 약했다는 약혼자 진술이 있었고, 고인의 가족들도 그 말을 믿어 사고로 종결될 뻔 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담당 검사가 사망 시점에 함께 있었던 사람의 진술만 믿는 것은 미심쩍다며 부검을 요구했고, 고인의 목에서 육안으론 확인할 수 없었던 압박 흔적이 발견됐다.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였다. 처음엔 발뺌하고 국민참여재판을 요구하던 약혼자가 유명 부검의의 소견이라고 하니 겁을 먹고 결국 범행을 인정했다.”
-죽음의 진실을 법의학으로 밝히기 위해 수사현장에선 무엇이 필요한가.
“최소한 살인 등 강력사건은 무조건 여러 수사기관의 3중 확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사망원인의 판단은 의사가 하게 돼있다. 다만 타살 의혹이 있는지, 부검 등 정밀한 확인이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은 1차 수사기관이 한다. 이 판단이 적절한지, 놓친 부분이 없는지를 별도 조직인 검찰에서 한번 더 살펴줘야 한다. 일본, 독일 등 우리나라와 유사한 사법시스템을 갖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체계다. 과학수사가 아무리 발전해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활용하기 어렵다.”
-매년 유언을 쓴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나.
“미국에서 2년 반 정도 공부하고 2011년에 귀국한 직후 고교 시절부터 굉장히 친했던 친구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시차적응이 안 됐으니 다음주에 보자고 했는데, 그날 친구가 대신 다른 술자리에 가서 과음하고 자다가 사망했다. 차마 내가 부검을 할 수가 없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동료가 부검을 해줬는데 부정맥이 왔더라. ‘그날 술자리만 피했어도 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약속을 미루지 않았으면 술을 덜 마시게 할 수 있었는데’ 하고 한동안 죄책감에 힘들었다.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삶을 이 친구 몫까지 더 낭비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남길지 정리하고 인생을 갈무리하는 방법으로 그해 겨울부터 매년 연말에 유언을 쓰게 됐다.”
-가장 최근에 쓴 유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가장 많이 남겼다. 사랑하고 고마웠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특히 아들에게는 엄마가 뭘 좋아하니 잘 챙겨달라는 당부도 했다. 내 장례식에 누구를 부를지 쓰면서 인간관계도 돌아봤다. 유언을 기록하며 느끼는 건 나는 미련이 많은 사람인 것 같더라. 죽고 나면 잊히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사람들이 날 추억해줬으면 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유언을 쓰는 건 날 돌아보는 과정이더라.”
-올해 연말에도 유언을 정리한다면 어떤 문장이 또 추가될까.
“3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혼자 지내신다. 나를 비롯한 삼남매가 매주 찾아뵙고 있긴 한데, 그럼에도 평생 함께한 반려자가 없는 외로움이 보여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아내가 나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아서 홀로 남겨질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가 담길 거다.”
■유성호 교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법의학자이자 의사다.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및 의대 도서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으로 20여년 간 1500건이 넘는 부검을 진행했다. 다수의 언론 및 방송에서 자문을 맡아 법의학을 대중에 알리는데 기여해왔다. 57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데맨톡’을 운영 중이다. 2012년부터 매년 개설하고 있는 교양 강의 ‘죽음의 과학적 이해’는 서울대를 대표하는 인기 강의로 꼽힌다.
김희리 기자
세줄 요약
- 죽음의 금기 깨고 삶의 가치 되묻기
- 고통 없는 임종과 자기결정권 강조
- 유언 작성으로 삶과 관계를 돌아보기
2026-09-2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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