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에 굴복? 트럼프, 대러제재 전격 유예…러 “역사적 순간” 젤렌스키 “오판” [배틀라인]

권윤희 기자
수정 2026-10-18 09:37
입력 2026-10-18 09:37
러 에너지 구매국 추가 관세 등 유예
중간선거 앞두고 경윳값 인하 포석
젤렌스키 “러 공격 부추길 뿐” 비판
공화당서도 “종전 아닌 전쟁 연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국 등에 대한 신규 제재 시행을 유예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반응이 엇갈렸다. 러시아는 미·러 경제협력을 위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환영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을 부추길 것이라고 반발했다. 미국 의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의회의 입법 취지를 무시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굴복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17일(현지시간) 미 언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린지 O. 그레이엄 러시아·이란 제재법’의 일부 조항 시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지난달 18일 법에 서명한 지 약 한 달 만이자 추가 제재 시행 시한을 이틀 앞둔 결정이다.
이 법은 러시아산 원유·가스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5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상품에 최대 10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러시아산 제품에 최대 500%의 관세를 부과하고, 러시아의 제재 회피에 활용되는 ‘그림자 유조선단’과 금융기관 등을 겨냥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 7월 사망한 대러 강경파 린지 그레이엄 전 공화당 상원의원의 이름을 따 ‘그레이엄법’으로 불린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18일까지 제재 대상을 결정하거나 새로운 제한 조치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의회에 통보해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현시점의 제재 면제가 미국 국익에 부합한다는 인증서를 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다만 면제가 국익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이유나 의회에 제시한 근거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번 결정은 다음 달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높은 에너지 가격을 낮추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가격 인하 노력이 제재 유예의 배경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산 경유 30만t 이상을 세계 시장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뒤 러시아산 경유 수출 관련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그레이엄법이 시행되면 이 같은 공급 구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꼽힌다.
러 “역사적 순간” 우크라 “푸틴 공격 부추길 뿐”러시아는 즉각 환영했다.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대통령 대외 투자·경제협력 부문 특별대표 겸 러시아직접투자기금(RDIF) 최고경영자(CEO)는 텔레그램에 “트럼프 행정부가 그레이엄법을 유예한 것은 중요하고 진정으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재와 대립 대신 대화와 상호 호혜적인 협력, 세계 안정에 대한 공동의 책임이 자리 잡게 됐다”며 미·러 경제협력이 양국의 이익과 세계 경제 안정에 기여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고 주장했다. 엑스(X·옛 트위터)에도 양국의 경제 대화와 평화 구축 노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적었다.
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7일 엑스에서 제재 시행을 막는 결정은 잘못됐다며 “이는 분명히 러시아에만 도움이 된다”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발전·송전 시설 15곳 이상을 공격했다면서 겨울을 앞두고 수백만 명의 주민을 전기와 난방 없이 지내게 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격을 멈추게 하려면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제재 완화가 러시아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며 “이는 그들의 만족감과 사람들을 계속 죽이려는 욕구에 기름을 부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 “이것으로는 분명히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며 “‘경유 딜’이 제재 해제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푸틴에 굴복”…美의회서도 비난 빗발미국 의회에서도 초당적인 반발이 이어졌다.
공화당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엑스에 “무책임을 넘어선 처사”라며 “상원에서 찬성 86 대 반대 11로 통과된 법의 시행을 대통령과 참모진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하고 민간인을 학살하는 러시아 독재자에게 행정부가 굴복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같은 당 존 코닌 상원의원은 관련 보도를 공유하며 “린지는 경악할 것”이라고 적었다. 돈 베이컨 공화당 하원의원도 “대통령은 전쟁을 끝내는 게 아니라 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리처드 블루먼솔 상원의원은 제재 유예가 국가안보와는 무관하며 푸틴 대통령에게 아첨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공화당 의원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돈 바이어 민주당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다시 굴복하고 우크라이나를 배신했다며 러시아의 불법적 전쟁을 처벌하기 위해 마련된 법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상원 은행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이번 결정을 “완전한 지도력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제재 유예로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규모로 구매하는 중국과 인도도 추가 관세 부담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의 경유 공급 확대를 통해 에너지 가격을 낮추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과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압박해야 한다는 우크라이나·미 의회의 요구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권윤희 기자
세줄 요약
- 트럼프, 러시아 제재 일부 시행 유예 결정
- 러시아는 역사적 순간이라며 즉각 환영
- 우크라이나·미 의회는 푸틴 굴복이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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