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간송 특별전의 단원 그림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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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수정 2026-10-15 03:33
입력 2026-10-14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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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갑자 동방삭’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갑자(甲子)는 육십갑자의 첫 번째 조합이지만, 그렇게 시작하는 60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 동방삭은 삼천갑자, 곧 18만년이나 살았다.

중국의 동방삭은 박학다식하고 언변이 뛰어난 것으로 사마천의 ‘사기’에 적힌 실존인물이었다. 그런데 전설 속의 동방삭은 3000년에 한 차례 열린다는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고 장수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도교에서 서왕모는 불로장생을 관장하는 최고 여신이다.

동방삭 이야기는 한반도에서 저승사자 설화로 탈바꿈한다. 동방삭은 자신이 일찍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저승사자에게 밥과 신발, 노잣돈을 준다. 동방삭의 후의에 마음이 움직인 저승사자는 수명 장부를 고쳐 주었다. ‘삼십’(三十)이라 적힌 장부에 한 획을 더하니 ‘삼천’(三千)이 됐다는 것이다.

제주도의 서사무가 ‘맹감본풀이’와 비슷하다. 가난한 소사만은 들판에서 해골을 발견한다. 집으로 옮겨와 정성껏 모시자 사냥이 잘 되어 큰 부자가 됐다. 어느 날 해골 주인이 꿈에 나타나 저승사자가 곧 데리러 올 것이라고 알려 준다. 크게 대접받은 사자들은 저승으로 돌아가 역시 수명 장부에 획을 하나 그었다.

지금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는 ‘상서(箱書), 컬렉션을 읽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상서란 간송 전형필이 중요한 컬렉션을 넣어 보관하던 오동나무 상자에 당대 최고 감식안을 가진 전문가들이 적어 놓은 유물의 이름과 가치를 말한다.



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閬苑偸桃)도 출품작의 하나다. 훔친 복숭아를 들고 있는 동방삭을 그렸다. 낭원은 서왕모가 산다는 곤륜산의 정원, 투도는 복숭아를 훔친다는 뜻이다. 역대 서화가를 총정리한 ‘근역서화징’을 남긴 위창 오세창은 상자에 ‘단원 인물화의 보기 드문 걸작’이라고 적었다. 위창은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서울신문 초대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상자가 있어 그림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

서동철 논설위원
2026-10-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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