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 칼럼] ‘대체불가 대한민국’이 되려면
수정 2026-10-15 03:30
입력 2026-10-14 22:11
美中, 과잉의존 무기로 韓 압박
전략적 자율성 확보 핵심 과제
기술혁신 등 대체불가성 중요
민관 협력·초당적 합의 있어야
한미 관계가 이상기류를 맞고 한중 관계가 잰걸음인 가운데 현 정부는 ‘대체불가 대한민국’이란 슬로건을 띄웠다. 마치 지난 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처럼 자국의 능력을 과장하는 과잉 의식의 표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국이 처한 고단한 전략적 딜레마 상황에서 나온 제언이다.한국은 상호의존의 네트워크, 특히 미국과의 군사동맹 네트워크,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소비시장과 공급망을 활용해 안정과 번영을 이루었다. 문제는 강대국들이 상호의존을 무기화해 한국의 전략적, 상업적 양보를 강요하는 상황이다. 10년 전 중국은 사드 무기체계 도입이란 한국의 안보정책에 반대해 경제 보복을 가했다. 한국의 고통이 각별했던 것은 과잉 의존구조 때문이었다.
미국도 한국의 과잉 의존구조를 무기화해 반도체와 배터리 부문에서 자국에 과도한 투자를 강요하는 동시에 중국에 대한 공급망 단절을 압박해 왔다. 나아가 트럼프는 미국의 제조업 회생을 위해 작년 합의한 3500억 달러 규모 투자 패키지 한도를 넘어 알래스카 LNG 개발을 추가 압박하고 있다.
이렇게 직접 투자를 확대할수록 투자 관련 수출이 증가하고 대미 의존도가 높아져 트럼프 관세 압박의 구실이 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대미 과잉 의존이 중국의 지정학적 이익을 훼손할 경우, 희토류 등 핵심광물 공급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의 보복 위협이 가중된다. 따라서 핵심 과제는 상호의존의 네트워크 속에서 어떻게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것인가이다.
본래 자율성이란 타국에 구속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미중 대결 구도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지 않고 외교적 운신의 폭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자율성은 상대방에 대한 의존을 축소해 성취할 수 있으나 한국은 안보적 자립이나 경제적 자급자족 그 어느 쪽도 실현가능하지 않다. 반면 한국에 대한 상대방의 의존을 증대시켜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현 정부의 대체불가 개념은 이런 논리에서 나왔다. 경제적 상호의존을 유지하되 타국이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기술과 산업을 확보해 강대국이 한국을 방기하거나 압박하지 못할 전략적 위치를 점유한다는 사고다. 반도체, 조선, 배터리 등 강력한 국제경쟁력을 갖춘 제조업 부문을 레버리지로 해 강대국의 강압을 억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략적 자율성으로 이어지는 대체불가성의 확보는 기술 혁신만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적 계산과 판단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대체불가 요소를 지속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첨단 생산능력을 미국 현지로 이전할수록 미국은 장기적으로 한국을 대체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 또한 대미 투자에 따라 국내 핵심 부문 투자가 약화되면 중국의 추격을 허용해 대체 역량을 상실하게 된다. 대미 투자는 상업적 합리성뿐만 아니라 전략적 합리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둘째, 미중 양측에 의미 있는 대체불가 영역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이 첨단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재산업화에 필수적인 파트너가 되더라도 중국에 대해 레버리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전략적 자율성이 될 것이다. 더욱이 한국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조선, 배터리 등은 ‘축적된 노하우와 진입장벽이 높은 기술’이라기보다는 ‘타국이 따라오기 어려운 규모와 점유율’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어 ‘초격차’ 유지가 만만치 않다.
끝으로, 대체불가성 확보를 위한 국내적 조건이 필수적이다. 대체불가성은 기업이 보유하는 것이다. 이들의 상업적 판단은 국가의 전략적 판단과 다를 수 있으므로 국가가 기업의 레버리지를 동원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긴밀한 민관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정치적 합의체계도 중요하다. 반도체 신규 투자지를 놓고 정치권이 분열되어 있듯이 대체불가 대한민국 구호가 실제 전략으로 모습을 갖추는 순간 정파적 대결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한국의 전략적 레버리지는 대체불가 자원을 사용할 의지와 일관성이 있다고 상대방이 믿을 때 비로소 얻어진다. 정치권의 초당적 합의가 필요한 때다.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2026-10-15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THE NEXT : AI 운명 알고리즘 지금, 당신의 운명을 확인하세요 [운세 확인하기]](https://imgmo.seoul.co.kr/img/n24/banner/ban_ai_fortune_v2.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