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한국문학의 힘 그리고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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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10-06 01:26
입력 2026-10-05 21:05

한국문학에 쏟아지는 해외 관심
지속·확장 위해 ‘좋은 번역’ 절실
번역대학원대학 설립 속도 내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둔 마음은 느긋하다. 기적 같고 벼락 같았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받아든 것이 불과 2년 전이기 때문이다. 오랜 염원이 이루어진 뒤의 여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기대와 걱정이 예상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데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 전 열린 한국문학번역원의 ‘해외 출판인 초청사업’에 전년 대비 45% 증가한 총 94개사가 지원 신청했다고 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언어권의 중요도, 출판사의 전문 역량과 인지도 등을 고려해 12개국에서 20개사를 초청했는데 이 가운데 펭귄 북스, 주어 캄프, 플뢰브 에데시옹 등 세계적 출판사가 이름을 올렸다. 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뉴욕과 파리에서 개최한 K북 홍보 행사도 많은 해외 출판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문득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 한국이 주빈국이 되었을 때를 떠올리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전에 주빈국이 되었다는 흥분도 잠시. 이름 있는 독일출판사에서 나온 한국문학 번역서가 거의 없다는 현실에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었다. 부랴부랴 독일어로 번역된 원고 뭉치들을 들고 독일출판사들을 찾아다니며 출판을 읍소했지만 제대로 된 면담 기회조차 만들기 쉽지 않았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출판 의뢰를 위해 찾아다녔고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유수의 출판사들이 스스로 한국에 방문신청을 했고 출장으로 한국문학과 작가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열기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불과 20년도 안 된 사이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에는 무슨 비밀이 있을까.

해외 저명 출판사 편집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한국문학의 힘’에 모아진다. 한국문학은 시대와 사회의 문제를 긴밀하게 문학작품으로 형상화, 담론화하는 독특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내용과 형식 어느 쪽에 기우는 것이 아닌 예술로서의 미학적 가치를 중시하는 동시에 사회적·공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면은 동시대 다른 나라 문학에서 찾기 힘든 지점이라고 말한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한국 근대문학이 일제라는 거대 식민제국주의와 맞선 관계에서 출발했고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독재와 민주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근현대사와 길항하며 축적한 유전자 같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21세기 이후 급속히 진행된 세계화와 디지털화 속 개인화, 개성화라는 흐름 속에서도 개인 서사에 침잠하지 않고 시대의 사회상을 통찰하며 변화의 의미를 날카롭게 포착해 온 점이 다른 독자들에게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한국문학은 프랑스 문학이 원래 가지고 있었으나 망각하고 있었던 앙가주망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고 말한 데 이어 “한국 현대문학은 상상력이 결여되고 모더니스트적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다른 나라의 소설에 영감을 줄 것”이라고 상찬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쌓아 온 한국문학의 힘을 세계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공감이 지속되게 만든 것이 번역이라는 사실이다. 번역은 단순히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식론적 공간이 다른 인식론적인 공간으로 옮겨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문학뿐 아니라 문자에 기반을 둔 K컬처의 지속 및 확장 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이다. K컬처의 미래와 번역은 분리할 수 없는 동행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K컬처의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전략사업이어야 할 번역대학원대학 설립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비본질적인 논리에 부닥쳐 자칫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는 걱정스러운 현실을 지켜보는 심정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곽효환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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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시인·경남대 교수
곽효환 시인·경남대 교수
2026-10-0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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