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나온 전기톱 든 구순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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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수정 2026-10-06 00:51
입력 2026-10-06 00:12

‘현역’ 김윤신 다큐 부국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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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김윤신. 모은 발 프로덕션(전명은) 제공
조각가 김윤신.
모은 발 프로덕션(전명은) 제공


“네 마음이 어디 있고 마음이 무슨 색깔인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뭘 하든 평생 그걸 찾아가라.”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열다섯 소녀는 지금의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 쌓인 시체를 일일이 뒤집어 가며 얼굴을 확인했다. 가족이 모두 피난을 떠나 서울에 홀로 남은 소녀에게는 오빠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결국 오빠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그저 살아남는 게 전부였던 소녀에게 우연히 만난 스님이 건넨 ‘평생’이라는 말은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전기톱을 들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조각가 김윤신(91)의 생애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다.

모은 발 프로덕션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임선애 감독의 영화 ‘김윤신은 미술관에 없다’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한다고 밝혔다. 김윤신은 이번 영화제에서 직접 레드카펫도 밟을 예정이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은 마흔아홉의 나이에 교수직을 내려놓고 홀연히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이후 40년간 남미의 나무와 돌, 원석을 깎고 다듬으며 치열하게 작업했다. 아흔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90분 분량의 이번 영화는 거기서 시작된다. 영화는 김윤신의 일상과 창작 과정을 따라가며, 오랜 세월 그의 곁을 지켜온 이들과의 관계와 연대에 주목한다. 임 감독이 직접 지은 영화 제목 ‘김윤신은 미술관에 없다’는 그가 미술관에 박제되거나 미술사 속으로 밀려난 존재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일하는 사람임을 분명히 한다.

모은 발 프로덕션은 백지숙 전 서울시립미술관장과 정순민 전 아르코극장장이 설립한 곳으로, 미술을 영화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한다. 이번 영화는 이들이 기획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오래오래 살아남을 그들’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이 프로젝트는 1953년 정전협정 이전에 태어난 여성 미술작가들의 생애와 작업을 30∼40대 영화인과 미술가의 시선으로 조명한다. 김윤신을 시작으로 김명희(77) 작가와 노원희(78) 작가의 이야기를 차례로 다룰 예정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백지숙 모은 발 프로덕션 공동대표는 “(과거 여성 작가들의) 인터뷰나 영상이 전무한 상황이라 영상 아카이브의 필요성이 절실했다”면서도 “단순히 기록물 형태로는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미술관 방문 경험이 영화관 관람 패턴을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본다”며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천재 예술가상을 넘어선 새로운 작가상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프로젝트는 영화뿐 아니라 방송과 출판, 전시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된다. 앞서 지난 6월 김윤신의 생애와 예술을 기록한 책 ‘김윤신, 전기톱을 든 여인’이 출간됐으며, 내년에는 다큐멘터리를 48분 분량으로 재편집한 ‘김윤신: 숨 쉬듯 쉼 없이’가 EBS에서 방송될 예정이다.

윤수경 기자
세줄 요약
  • 구순 조각가 김윤신 다큐, 부산국제영화제 첫 공개
  • 49세 교수직 사퇴 뒤 아르헨티나서 40년 작업
  • 여성 미술가 기록 확장, 영화·방송·출판 연계
2026-10-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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