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M&A 심사의 예측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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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09-23 00:55
입력 2026-09-22 23:53
공정거래위원회가 2025년에 심사한 기업결합은 590건이었다. 전년보다 26% 줄었다. 반면 결합 금액은 358조원으로 82조원 늘었다. 건수는 줄고 규모는 커졌다는 것은 심사 한 건의 무게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로봇 같은 인공지능 가치사슬에서 게임과 화장품까지 분야도 넓어졌다.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지고 결합의 효과가 인접 시장까지 미치는 거래에서 경쟁 제한성을 가려내는 일이 과거의 잣대로는 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업들도 안다. 그래서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가 아니라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다”에 가깝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신고 후 30일 안에 심사하고, 연장하더라도 120일 이내에 결과를 통지하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자료 보완에 걸린 기간은 이 기한에 넣지 않는다. 보완 요청이 거듭되면 법정기한의 시계는 멈추고, 명목상 120일 절차가 실제로는 그 몇 배로 늘어나기도 한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불가피한 설계지만, 기업으로서는 신고한 날부터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구조가 된다.

문제는 그 기다림이 중립적인 시간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심사 중에도 시장은 멈추지 않는다. 경쟁 사업자는 제휴를 맺고 투자를 집행하지만, 결론을 기다리는 쪽은 사업 계획을 확정하지 못한다. 비슷한 시기에 논의가 시작된 거래들 사이에서도 결론이 먼저 난 쪽이 실행 단계로 넘어간다. 결론의 시점 차이가 시장의 실행 순서를 결정하는 셈이다. 거래 종결 시한을 미루고 인수 약정의 재협상 비용은 그 다음 문제다.

해법은 심사를 느슨하게 하는 게 아니라 절차를 보이게 만드는 데 있다. 유럽연합은 신고 전 협의 단계에서 쟁점과 필요자료를 미리 추려내고, 미국은 당국과 기업이 자료 제출과 검토 일정을 사전에 합의하는 관행을 두고 있다. 자료 보완 요청과 기간 불산입의 근거를 법률에 명확히 하자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여기에 심사 착수 단계에서 일정 로드맵을 공유하고, 보완이나 기간 연장 시 사유를 서면으로 알리며, 요청을 초기에 묶어 제시하고, 진행 경과를 주기적으로 통지할 수 있다. 결론을 앞당기라는 요구가 아니라, 결론에 이르는 길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기업도 함께 보게 하자는 것이다.

물론 공정위 혼자 감당할 문제가 아니다. 사건 규모와 난도가 올라간다면 걸맞은 인력과 예산이 뒷받침되는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더 빠르고 정교한 심사를 요구하며 정작 필요조건은 갖춰주지 않는다면 공정한 요구라 하기 어렵다.

경제에서 예측가능성은 매우 중요하다. 한 제자가 그의 벤처기업을 한국에서 싱가폴로 옮겼다. 이유를 물으니 싱가폴도 규제가 깐깐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결정을 빨리 투명하게 해준다고 옮긴다던 말이 인상깊었던 기억이 난다. 많은 기업과 인재들을 우리는 여러모로 잃고 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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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2026-09-2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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