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러시아 청년들은 모스크바를 원할까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26-09-22 00:37
입력 2026-09-22 00:37

러, 중앙권력으로 지방 부흥 도모
여수세계섬박람회 부실 논란
지방의 자생적 발전 난망 현실

여러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러시아지만, 그중에서도 러시아 바깥에 널리 퍼진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면 악명 높은 ‘모스크바 집중’이다. 소련 해체 이후 전국에 산재했던 제조업이 초토화되고 경제가 원자재 수출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지역 경제는 말라붙은 반면 권력과 부, 세계와의 연결망은 모스크바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모스크바는 2024년 기준 러시아 경제 생산의 약 21%를 차지한다. 2025년 인구는 약 1327만명으로 러시아 전체 인구의 9.1%에 달한다. 그야말로 중심 중의 중심이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한 2022년 이후에도 러시아의 여러 지방 도시를 여행한 나로서는 이러한 이미지에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콘크리트가 깨진 도로에서 대낮부터 무기력하게 보드카를 마시며 행인에게 시비를 거는 광경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지역 도시마다 인프라 개선 사업이 활기를 띠었고, 교외에는 그럴듯한 신축 아파트가 계속 들어섰으며 세련된 식료품점도 입점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국가가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일시적인 미봉책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지방이 침체되었다는 한국에서도 지역 인프라는 나날이 개선된다. 겉으로 보이는 외관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9월 11일부터 17일까지 우랄 지역의 중심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열린 국제청년축전에서 그 ‘속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얻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국제청년축전은 러시아 청년 5000명과 세계 각지에서 온 청년 5000명, 도합 1만명을 모아 일주일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연, 교류 기회를 제공하는 러시아 정부의 야심작이다. 규모는 해마다 다르다. 세계 각지의 청년들을 만난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광대한 러시아 전국에서 온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출신과 직업은 다양했다. 북서쪽 끝 무르만스크의 심리상담가, 남부 칼미크 공화국의 청년 정치인, 시베리아 부랴트 공화국의 청년 공무원, 우랄연방대학교의 경제학 교수부터 옛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도네츠크의 농구 선수와 타타르 공화국의 기계 제작 엔지니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들과 대화하며 느낀 것은 이들이 ‘언젠가 모스크바로 떠나려는 청년들’이 아니라, 자기 지역에서 제공되는 교육과 취업 기회를 바탕으로 그곳에 뿌리내리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점이었다. 인구가 아니라 지역별 안배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참가자를 선발한 것 역시 푸틴 정부가 원하는 미래 엘리트가 각 지역에 기반을 두면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새로운 세대임을 보여 주는 신호였다.

러시아가 최근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지역 부흥’의 배후에 강력한 중앙집권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에서는 2012년 주지사 직선제가 부활했지만 크렘린은 후보 선별과 권한대행 임명, 핵심성과지표(KPI)를 이용한 평가를 통해 지역 지도자들을 강하게 통제한다. 여기에 지역 인재를 발굴하는 ‘러시아, 기회의 나라(RSV)’ 플랫폼과 전국의 유소년 영재를 육성하는 ‘시리우스’ 등이 더해진다. 강력한 중앙정부의 권위가 오히려 지역 인재 육성과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러시아 정부의 정책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 국제청년축전이 한창이던 때 한국에서는 700억원, 혹은 그를 훨씬 초과하는 예산이 투입된 여수세계섬박람회를 둘러싸고 부실한 콘텐츠와 예산 낭비 논란이 거셌다. 사실 이는 우리 지방자치가 처한 현실을 드러내는 숱한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예산은 예산대로 쓰지만 지역의 자생적인 발전 생태계는 고사하고 인재는 서울로 떠난다. 이제는 “러시아 걱정할 시간에 한국 걱정부터”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임명묵 작가

이미지 확대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2026-09-22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