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스포츠 정신 좀먹는 어긋난 팬덤

박성국 기자
수정 2026-09-14 00:40
입력 2026-09-13 23:47
배재고 사태 발생 2개월
축구장에서 또 지역 비하
혐오는 성장 막는 걸림돌
“느그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축구만 하고 그러면 나중에 커서 축구된다.”고교 시절 당시엔 드물게 체벌을 하지 않아 인기가 높았던 사회·문화 선생님은 ‘축구’를 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돌이켜 보면 적어도 1980~90년대 부산을 비롯한 경남 지역에선 축구를 ‘바보’ 혹은 ‘멍청이’와 비슷한 뜻으로 사용하곤 했다. “야이 바보, 축구, 똥개, 온달아!”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이는 구기 종목 축구가 아닌, 가축 축(畜)에 개 구(狗)가 결합한 한자어로 ‘사람답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뜻한다.
30년도 지난 학창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 건 유감스럽게도 최근 한국 프로축구 K리그1에서 일부 서포터스가 일으킨 ‘지역 비하’ 사태를 지켜보면서다. 지난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는 종료 직후 서울의 응원석에 상대 구단 등을 노골적으로 비방하는 현수막이 펼쳐졌다.
현수막에는 전달수 전 인천 구단 대표와 조건도 현 대표를 조롱하는 듯한 문구와 함께 ‘人賤 UTD’라는 표현이 담겨 있었다. 인천(仁川) 지명을 ‘비천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한자어로 바꿔 표현한 것으로, 구단주인 박찬대 인천시장이 “스포츠의 본질을 훼손하는 지역 비하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면서 스포츠 팬덤의 신경전이 정치권으로 번졌다.
일부 팬들의 일탈에 누구보다 빠르게 고개를 숙인 건 서울 구단이었다. 서울은 “이번 사안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재발 방지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현수막을 펼친) 해당 소모임 대표자의 FC서울 홈경기 출입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며 공개 사과했다.
연맹 차원의 구단 징계도 뒤따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상벌위원회를 열고 서울 구단에 제재금 800만원을 부과했다. 연맹은 상대 팀을 비방하기 위한 공격적인 표현물 등의 경기장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관리를 소홀히 한 구단에도 책임이 있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상대 구단 등을 비방하는 악의적인 표현물을 게시한 행위가 K리그가 지향하는 상호 존중의 문화를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지역을 연고로 한 프로 스포츠에서 팬들 간의 응원 경쟁은 ‘보는 스포츠’에서 함께 호흡하고 뛰는 ‘참여하는 스포츠’로 거듭나며 해당 종목 전반의 건전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2년 연속 ‘쌍천만 관중’ 시대를 넘어 1982년 프로 출범 이후 첫 1300만 관중 돌파에 도전하는 프로야구 KBO리그가 대표적이다. 지금의 KBO리그 관전 문화는 2000년대 이전과는 상전벽해 수준으로 탈바꿈하며 명실상부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패배에 격분한 팬들이 상대 구단 버스에 불을 지르고, 불붙인 쓰레기통을 그라운드에 던지곤 했던 야만적인 행위는 KBO 40년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옛일이 됐다.
경기 일수를 비롯해 종목 특성 자체가 다른 프로축구와 프로야구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해마다 누적 관중이 급격한 우상향을 그리는 야구와 장기 정체에 빠진 축구는 해당 종목을 대하는 팬들의 자세에서 그 차이를 찾을 수 있다. 야구 역시 지금도 팬들의 크고 작은 충돌은 있지만, 상대 비방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향한 ‘응원’에 더 집중하며, 상호 비방은 팬들끼리 자정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은 미성숙한 고교 야구 선수들이 지역 비하·역사 왜곡 구호를 외쳐 국가적 논란이 일었던 게 2개월 전이다. 어린 선수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비난이 빗발쳤고, 해당 구호를 주도한 일부 학생은 야구를 그만두며 프로의 꿈을 접어야 했다. 축구로 무대를 옮겨 발생한 지역 비하 판박이 사태를 보면 당시 학생들을 향했던 어른들의 손가락질은 결국 성찰과 자성 없는 윽박과 분풀이에 불과했던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남는다.
박성국 문화체육부 차장
2026-09-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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