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에 인공태양 뜬다”/소장물리학자 이경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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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1-01 00:00
입력 1998-01-01 00:00
‘2002년에는 한반도에서 또 하나의 태양이 솟는다’.
무인년의 새날을 알리는 동녘의 붉은 해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4년뒤 세계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는 ‘인공태양’을 우리 손으로 재현해 내고야 말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사람이 있다.
국산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장치’(KSRAR)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물리학자 이경수 박사(42·대덕 기초과학지원연구소 KSTAR 총괄연구책임자).95년 6월 핵융합에 필수적인 섭씨 2천만도짜리 대형 플라즈마발생장치 ‘한빛’(한민족의 빛)을 성공적으로 가동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데 이어 현재는 이를 토대삼아 우리나라를 세계 정상의 핵융합기술 보유국 반열에 올려 놓은 ‘한국 과학계의 자존심’이다.
그가 2002년 선보일 ‘KSTAR’는 지금까지 나온 핵융합장치중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기술로 설계됐다는 선진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10년 완공하는 ‘국제 열 핵융합로’(ITER)의 유력모델로 꼽히고 있다.
80년 5·17이 터지면서 암울한 생각에젖어 서울대 대학원(물리학과)을 중도 포기하고 미국 유학길에 나선 그는 10년 넘게 핵물리학 연구에 정진한 끝에 마침내 과학자들이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MIT 교수직에 오른다.하지만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은 한순간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그토록 소중한 MIT교수직을 과감히 내던진 것은 바로 ‘고국에서 해야 할 일’ 때문이었다.
“80년대 중반 포항 방사성가속기를 만들 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요.무슨 쓸모가 있기에 그처럼 많은 돈을 퍼붓느냐며 김호길 박사가 돌았다고 욕하는 사람도 봤습니다.그럴 때면 김박사는 ‘노여워 하지 말자.다 걱정해서 하는 말들이니 걱정하는 대로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신념과 의지로 밀고 나갈 수 밖에 없네’라고 되뇌곤 했지요”이박사는 과학기술이 미래 투자임을 묵묵히 실천한 고 김박사 같은 분이 있었기에 자신도 불모지나 다름없는 핵융합연구에 인생을 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박사는 정답을 부인한다.‘정답보다 더 좋은 정답이 없을까,좀더 잘해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없이 기존의 패러다임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미래가 없다고 믿는 까닭이다.과학은 새로운 것이며 그 추진력은 다름아닌 열망과 호기심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이박사는 요즘도 하루에 두차례씩 출근한다.집에서 식사한 뒤 아침,저녁 8시가 되면 어김없이 연구소에 나간 지가 어느덧 6년째.초등하교 5학년짜리 큰아들 승훈(12)이가 “저녁에도 출근하는 아빠”라며 볼멘소리를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의 연구실 벽면 한쪽에는 빵떡모자 차림에 책을 안고 사색에 잠긴 채 프린스턴대 교정을 거니는 아인슈타인의 말년 모습이 대형 패널에 담겨 걸려있다.자신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자 ‘핵융합의 황제’로 불리는 텍사스대학 로젠 블루스 박사가 “세계 최고가 되라“며 준 것이다.
그가 연구소에서 보내는 시간은 1주일에 60∼70시간.하루 평균 10시간 남짓을 아인슈타인과 함께 보내며 ‘또다른 아인슈타인’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몇년전에 감사원에서 우수공직자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188신고센터라는 것이 있다는 데 나쁜 짓만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도 신고하는 모양입니다.누군가 우리 연구소에 늘 불이 켜져 있을 만큼 열심히 일한다고 신고해서 졸지에 상을 받았지요”
세계적인 핵융합 전문가로 떠오른 이박사의 20년뒤의 꿈은 ‘소박’하다.손자의 손을 이끌고 와 ‘인공태양’을 보여주며 “이것이 할아버지 평생의 흔적이란다”고 말해 주고 싶다.<박건승 기자>
1998-01-0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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