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도 이별도 ‘AI 처방전’…6명 중 1명 그 조언 따랐다

이현정 기자
수정 2026-10-09 01:12
입력 2026-10-09 00:21
인생까지 묻는 AI 과의존 시대
10명 중 7명이 정서적 목적 이용심리적 약자일수록 AI 판단 맹신
청소년 절반은 사람보다 더 의존
복지부, AI 사용 가이드라인 내놔
외로움과 마음의 병을 안은 사람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이라는 ‘디지털 처방전’을 찾고 있다. AI와 밤새 대화하며 퇴사·이별 같은 중대 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심각한 정신적 위기마저 챗봇으로 자가 진단하는 실태가 수치로 드러났다.
8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생성형 AI 이용에 따른 국민 정신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AI를 쓴 15~79세 1019명 중 68.8%(701명)가 정서적 목적으로 이용했다. 10명 중 7명이 기계에 속내를 털어놓은 셈이다.
처음엔 학업·업무·검색(81.3%)을 위해 AI를 썼지만 점차 마음을 나누는 창구가 됐다. 현재 이용 목적(복수 응답)은 ‘일상 대화·말동무’(54.4%), ‘감정적 교감·위로’(48.4%), ‘정신건강·심리상담’(44.1%) 순이었다. 사람 대신 AI를 택한 배경에는 사회적 고립과 현실적 제약이 깔려 있다. 정서적 목적 이용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즉각 대화할 수 있어서’(85.6%), ‘소문날 염려가 없어서’(71.9%), ‘사람에게 말하기 꺼려지는 주제라서’(70.9%), ‘주변에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62.6%) 등을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손쉬운 위로에 기댄 대가는 적지 않았다. 정신건강·심리상담 목적 이용자 449명 중 23.4%는 현실에 집중하려 해도 AI와 대화를 계속한다고 답했다. 수면·일상에 지장을 받았다는 응답은 15.1%, AI 조언으로 퇴사·이별 등 중대 결정을 내린 비율은 17.8%였다.
특히 심리적 약자일수록 AI를 맹신하는 경향이 짙었다. 정신건강이 ‘나쁘다’고 답한 사람 중 33.9%는 AI 답변으로 우울·불안 장애 등을 자가 진단하거나 의학적 판단으로 받아들였다. 정신건강이 좋다고 답한 사람(9.3%)의 세 배를 웃돈다.
청소년은 더 심각하다. 15~18세 응답자 201명 중 69.2%가 정서적 목적으로 AI를 썼고, 51.7%는 주변 사람보다 AI에 의존적이라고 답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또래 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초등학생이 챗봇에 과몰입해 선정적 대화에 반복 노출되거나 따돌림을 당하던 중학생이 챗봇에 집착하며 치료를 소홀히 한 사례도 보고됐다.
복지부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날 ‘AI의 동의를 내 생각이 맞다는 근거로 삼지 말고 중요한 결정은 사람이나 전문가와 상의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백종우 국민생명안전위원회 부위원장은 “현실과 가상, 사람과 AI의 경계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접어들었다”며 “앞으로 10년간 AI 시대의 새로운 정신건강 문제에 대비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세줄 요약
- AI, 정서적 위로·상담 창구로 급부상
- 이용자 68.8%, 마음 나누는 용도 활용
- 중대 결정·자가진단에 AI 의존 우려
2026-10-0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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