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해돼도 특명 다하라”…헤이그특사단에 내린 고종의 밀명

이기철 기자
수정 2019-03-14 09:41
입력 2019-03-1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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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특사 관련 고종 구체적 전언 나온 건 처음1907년 7월 인터뷰 실은 독일 신문 보도 첫 공개
신문 “특사단, 밤마다 주권보장 논의…특명 실행”
특사 “고종 강제퇴위, 일본 돈과 韓 변절자 합작”
일본에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긴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했다. 1905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준은 헤이그에서 순국했다. 일본의 방해 속에서 특사단이 만국평화회의의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외교전을 펼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올해는 고종 승하 100주년이다.
이위종과 이상설은 만국평화회의가 끝난 뒤 7월 24일 영국을 거쳐 미국에서 외교전을 펼치기 위해 떠났다. 헤이그 특사단은 미국행 배에 오르기 전 로이터 통신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이는 독립기념관이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중국학과의 고혜련 초빙교수에 연구 의뢰해 지난해 12월 발간된 ‘독일어 신문 한국관계기사집’에 실려있다.
기사에는 “대표사절단이 사우샘프턴에서 미국으로의 항해를 시작했다”고 돼 있었다.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이위종 왕자는 미국에 가서 일본의 한국탄압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리고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방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면서 “그리고 나서 몇 주 후에 런던으로 돌아와 런던에 회사를 차리고, 대한제국에서 펼치는 일본의 식민정치에 대항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또 “헤이그에서 그들의 임무가 실패했더라도, 그들에 대해 뭐라 말하지 못할 것”이라며 “특히 대영제국, 프랑스, 독일, 미국의 대표사절단은 한국의 상황에 깊은 동정심을 표했고 도움을 줄 것을 확인했다”고 적었다.
고 교수는 연합뉴스를 통해 “헤이그 특사가 만국평화회의에 들어가지 못해 실패했다는 게 일반적인 역사 인식이지만, 현실적으로 국제사회의 외교·군사적인 지원을 받기 힘들었던 상황에서 회담장 앞 국제주의자들이 상주하던 공간(프린세시넨그라흐트 6A번지)에서 ‘살롱 외교’를 통해 상당한 홍보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특사단의 특명 활동과 관련 “그들은 (헤이그 살롱에서) 밤마다 대한제국을 네덜란드와 같은 중립국을 만들고 대한제국의 독립주권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며 논의를 일으켰다”면서 “인터뷰 말미에 대표단은, ‘고종의 강제퇴위는 일본의 돈과 한국인 변절자들이 만든 것’이라 했다”고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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