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50주년] 주역들 지금은 뭐하나
수정 2010-04-19 00:42
입력 2010-04-19 00:00
정치권-2000년대 퇴조… 이경재의원 현역유일, 경제계-김기병·유덕희회장 아직도 일선 활약
4·19 주역 가운데에는 정치권에 진출했던 사람들이 유독 많았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30명 가까이 국회에 등원했지만 18대 현역 의원 중에는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이 의원은 18일 “4·19 혁명의 주역들이 산업화 현장에서 역할을 하면서 민주화는 물론 산업사회로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가 앞으로 선진 민주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법 질서의 확립, 전(全) 국민의 행복 추구권 확보, 통일의 완성 등 여러 가지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고 밝혔다.
4·19 혁명 당시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 의원은 현재 4·19혁명 50주년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광화문에 기념 조형물 건립, 4월19일의 공휴일 지정 등 다양한 4·19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처음 4·19를 ‘의거’에서 ‘혁명’으로 인정하고 수유리 묘지를 국립 4·19민주묘지로 격상시킬 때 청와대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1학년이던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은 최근 창당한 평화민주당의 전남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이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다면 김 전 의원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쪽 사람으로 분류된다. 당시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이던 이세기 전 의원은 서울에서 4선 의원을 지낸 뒤 지금은 한·중친선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고려대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이재환 전 의원은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정치권의 4·19 세대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가 2000년 16대 총선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퇴조에 접어들었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기택 수석부의장은 16대 총선에서 패배한 후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졌다. 한나라당 김중위 전 의원은 낙선한 뒤 17대 총선 때 공천에서 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이우재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 출마 때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뒤 한국마사회장을 끝으로 정치권을 떠났다. 중앙대 학생회 간부였던 민주당 유용태 전 의원도 17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서 낙선한 뒤 정치 일선에서 멀어졌다. 중동고 3학년 신분으로 고교생 시위를 주도했던 설송웅 전 열린우리당 의원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영광의 역사만큼 오욕도 적지 않다.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회장으로 선언문을 낭독했던 윤식 전 의원은 10대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내며 변절 논란에 휘말렸다. 각각 연세대와 동아대 재학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김원기·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까지 지냈지만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에 휘말리는 시련을 겪었다. 김 전 의장은 지금도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활동중이다.
경제계에서는 롯데관광개발 김기병 회장과 경동제약 유덕희 회장이 현역으로 뛰고 있는 ‘4·19 세대’로 꼽힌다. 김 회장은 한국외대 3학년 학도호국단 부위원장으로 있었고, 유 회장은 성균관대 학생운영위원장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김 회장은 이태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과 함께 4·19혁명기념사업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2010-04-1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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