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어린이 책 / 그늘에서 뒹굴
수정 2003-06-25 00:00
입력 2003-06-25 00:00
일본인 작가가 쓴 ‘그늘에서 뒹굴’(정숙향 그림,엄기원 옮김,달맞이 펴냄)은 해학과 운치로 채워진 단지에 푸욱 담갔다 꺼낸 듯한 이야기그림책이다.글쓴이는 국내에서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지금은 교토에 살고 있는 카나모리 쇼사쿠.전통소재의 동화를 유심히 봐 왔다면 ‘호랑이 놀이’‘도깨비’‘춤추는 호랑이’ 등의 그림책에서 이미 접했을 이름이다.
조선시대 풍속화를 닮은 표지그림을 지나면,곧바로 할머니의 옛이야기처럼 구수한 필담을 만나게 된다.‘산을 넘고 또 일곱개의 산을 넘은 산기슭에 정말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습니다.’로 익숙하게 운을 떼는 책은,탄탄한 서사구조가 돋보이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가난한 마을사람들에게 논밭을 빌려 주고 곡식을 욕심껏 빼앗아 가는 지독한 양반이 어느 여름날 집 앞의 나무그늘까지 팔아 먹는다.그런데 그게 스스로 함정을 파는 실수일 줄은 까맣게 몰랐다.나무그늘은 하루하루 넓어져서 양반집 대문으로,마당으로,마루로차올라오고 그 그늘을 따라 들어온 마을사람들은 결국 양반집을 통째로 ‘점령’해 버린다.
뒷짐을 진 채 거드름만 피우던 양반이 순진한 마을사람들에게 꼼짝없이 당하고마는 이야기 과정에 재치와 해학이 넘쳐난다.양반의 욕심을 꾸짖듯 점점 커져 가는 나무그늘이 아이들에게 ‘공동체 정신’의 교훈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한지로 표현된 그늘,먹선으로 다듬어진 민속화풍의 그림에도 운치가 넘실댄다.5세 이상.4000원.
황수정기자 sjh@
2003-06-2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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