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01] (2)빈 라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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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12-22 00:00
입력 2001-12-22 00:00
이처럼 '두 얼국의 사나이'로 그려진 그에게 세계의 이목이 쏠린 것은 냉전이라는 이념대립이 끝난 오늘의 세계에서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종교와 민족간 갈등이 안고 있는 '문화적 상대성'을 그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행한 테러는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테러를 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든 과정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게 이번 테러와 그에 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분명해졌다.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빈 라덴이 잡히느냐에 관계없이 테러의 발발 가능성은 여전히 남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문화적 차이에 따른 갈등요인을 어떻게 해소시켜나갈 것이냐는 문제는앞으로 인류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과제로 남았다.
79년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맞서 미국 등과 손잡고 '성전(지하드)'에 나섰던 빈 라덴은 소련이 물러나고 난 뒤 극단적 반미주의자로 돌아섰다. 미국의 압력에 의해 조국으로부터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아프간에 둥지를 튼 그는 체러조직 알 카에다를 결성하고 테러훈련캠프를 세워 반미 감정에 불타는 젊은이들을 끌어모았다.
98년 전 이슬람권에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성전을 촉구하는 '율법결정(fatwa)'를 선포하면서 본격적인 대미 테러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9·11테러 이전 빈 라덴은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 대사관 2곳·93년 세계무역센터와 지난해 USS 콜호 폭탄테러 배후 조종 혐의를 받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
2001-12-22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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