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중한업무/경관 하루근무 13시간 예사(경찰 달라져야한다: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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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0-21 00:00
입력 1994-10-21 00:00
◎1명이 국민 5백49명 「안전」 맡은 꼴/오물단속 등 협조업무도 76건… 부담 가중

21일은 경찰 창립 제49돌의 날.이날을 맞는 15만 경찰관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기념행사도 예년과는 달리 위문공연·다과회등이 생략된채 간소하게 치러진다.

잇따른 강력 사건으로 「경찰,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은데다 아직 보복살인범 김경록을 잡지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얻어터지기만」하는 경찰의 현주소가 꼭 경찰만의 탓일까.

30년이상 강력사건만 맡은 베테랑 형사인 정관웅경사(55)는 요즘 보복살인범 김을 쫓느라 벌써 10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잠복근무를 하고있다.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장비,쥐꼬리만한 수사비등 열악한 근무환경이 불만이지만 그는 묵묵히 자기의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경찰이 남을 탓하기만 하다간 결코 건강한 사회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게 그의 오랜 신조다.

남대문경찰서 하형석 민원봉사실장(34)은 뿌듯한 기분에 젖어있다.불우한 환경때문에 24년 전에 헤어진 동생을 찾아달라고 막무가내로 졸라대던 김일순할머니(66·마포구 공덕동)의 남동생 김영수씨(63)를 3개월여 동안의 컴퓨터조회 끝에 어렵사리 찾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굵직굵직한 사건이 터질때마다 그냥 지나간 법이 없다.「늑장수사」니,「뒷북수사」니,아니면 「나는 범인에 기는 경찰」이니 하면서 여론으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기 일쑤다.

달리 보면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 경찰이 선진국 경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정신적으로 혹사당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찰 1일 평균업무량은 선진국의 8시간보다 2배에 가까운 13시간이며 선진국은 국민 2백명에 경찰관 1명꼴인데 우리나라는 5백49명에 1명이다.열악한 경찰의 근무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경찰 고유업무 말고 민방위업무 협조,벌금미납자 소재수사,향토예비군의 무기·탄약관리,오물단속등 13개 부처 76건의 협조업무를 떠맡고 있어 그렇지않아도 버거운 경찰업무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일본·영국등 선진경찰처럼 효율적인 경찰행정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경찰관의 업무량 축소가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동국대 이윤호 교수(40·경찰행정학과)는 『우리나라 경찰은 범죄예방·범죄수사·범죄검거·대민서비스등 경찰 본연의 임무를 벗어난 과다한 업무로 인해 지쳐있다』며 『경찰은 범죄수사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하고 범죄예방은 국민 스스로의 몫이라는 인식과 함께 민간경비업을 활성화해 모두가 스스로 지킨다는 총체적 민생치안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성북경찰서 형사계 강대성경감(43)도 『실적위주의 기존 경찰체계에서 벗어나 흰머리 휘날리며 형사 콜롬보처럼 백의종군할 수 있는 「대형사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범죄수사를 위해서는 계급에 연연하지 않고 한우물만 팔수 있는 비간부의 전문화제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영국 어린이의 80∼90%는 장래의 꿈이 경찰관이라 한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경찰업무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애정이다.

주부 김영자씨(43·서울 중구 필동)는 『이젠 경찰만을 탓할 때가 아니고 시민 스스로 나서야할 때』라고 말했다.

결국 신뢰할 수 있는 민주경찰로의 자리매김은 경찰 스스로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무라는 지적이다.<주병철기자>
1994-10-2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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