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간판 2008] (3)간판, 예술로 태어나다
장세훈 기자
수정 2008-05-26 00:00
입력 2008-05-26 00:00
상혼의 때 벗고 ‘디자인의 옷’ 입다
군포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군포, 도시민의 놀이터를 리모델링하다
경기 군포시 산본은 정부의 200만호 주택공급 정책에 따라 분당·평촌·일산·중동 등과 함께 1990년대 초반 조성된 ‘1세대’ 신도시다.
산본역 주변 중심상업지역 11만㎡는 14만명에 이르는 산본 주민들의 ‘놀이터’나 다름없다. 때문에 이곳에 1500여 업소가 밀집해 과당 경쟁이 빚어지면서 건물은 5000개가 넘는 간판으로 도배됐다. 미관 저해는 물론, 안전사고에도 무방비로 노출됐다. 노점상까지 몰리며 공간의 질은 추락했다.
이같은 ‘바닥 경험’은 변화를 이끌어냈다.2000년부터 도시 미관을 좀먹는 노점상을 모두 없앴다. 노점상이 사라지자, 신도시 조성 이후 10여년간 방치되던 상업지역의 치부가 드러났다. 이에 2006년에는 가로수·가로등·보도블록 등 보행자를 위한 환경을 ‘업그레이드’했다. 가로 환경이 바뀌자 이번에는 건물을 뒤덮고 있던 볼썽사나운 간판이 ‘눈엣가시’가 됐다. 지난해 4월부터 중심상업지역 전체에 대한 간판 정비가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군포시 관계자는 “간판 정비를 위한 디자인 공모 당시 17개 업체가 신청했지만, 현장설명을 들은 뒤 무모하다고 판단한 12개 업체가 공모를 자진 포기했을 정도로 쉽지 않았다.”면서 “간판의 크기와 개수 등을 엄격히 제한하는 만큼 업주들의 반발도 거셌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시는 조례를 개정, 간판을 내걸 수 있는 층수를 기존 3층에서 5층 이하로 완화했다. 높은 층일수록 간판을 크게 해 가독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 결과, 지금은 전체 8층 이상 64개 건물 가운데 80%인 51개 건물에서 네온사인 등 혼란스런 간판은 사라지고 산뜻한 디자인의 입체형 간판으로 대체됐다.
또 간판 철거 후 지저분한 흔적을 제거하기 위해 건물 보수도 병행됐다. 나아가 간판 정비로 거리가 어두워진 만큼 보행자를 위한 야간경관조명을 올해 말까지 설치할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업주들도 간판을 남보다 더 크고 더 많이 달아야 장사가 잘 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하지만, 그에 앞서 간판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의왕, 예술의 옷을 입히다
서울외곽순환도로 평촌IC에서 빠져나오면 의왕시 갈미상업지구와 마주한다. 평촌신도시와 갈미택지개발지구 등을 끼고 있는 탓에 2002년 상권 형성과 함께 현란한 네온사인과 초대형 원색 간판도 밀물처럼 쏟아져 흔하디 흔한 ‘유흥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간판 정비가 이뤄지면서 지금은 ‘별천지’가 됐다. 우선 지구를 6개 블록으로 나눈 뒤 세계적인 화가인 피카소·고흐·고갱·샤갈·마티스·미로 등 6명의 이름을 붙여 차별화했다. 각 블록에는 화가의 대표 작품을 응용한 ‘거리정보조형물’이 곳곳에 세워졌다.
또 기존 판류형 간판은 모두 떼내고, 건물 외벽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간판게시틀’ 위에 디자인을 강조한 입체형 간판이 설치됐다. 업소별 간판 수가 줄어든 대신, 이용자들이 업소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건물별로 산뜻하게 디자인한 ‘안내표지판’ 등이 들어섰다. 때문에 업소의 이름이나 정확한 위치를 몰라도 거리와 건물 등에 대한 정보만 있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의왕시 관계자는 “불법 간판이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4층 이상 업소에도 간판을 허용했다.”면서 “밋밋하고 획일적인 간판을 없애고 세련되고 개성있는 간판을 설치, 거리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업소의 광고 효과를 높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간판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일부 업소는 여전히 창문 등에 너저분한 글씨를 새겨넣어 ‘옥에 티’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가계를 운영 중인 김모씨는 “간판이 바뀌어서 보기는 좋지만, 홍보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용객들의 시각은 다르다. 이모씨는 “간판이 바뀌니 음식을 잘할 것 같고, 청결할 것 같은 느낌”이라면서 “더 크고 화려한 간판을 내건다고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것은 아니며,‘간판 끼리의 경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군포·의왕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2008-05-2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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