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행정·공공기관 이전, ‘나눠 심기’ 아닌 ‘숲을 이루는 생태계’로 진행해야
수정 2026-10-15 16:55
입력 2026-10-15 16:55
정부가 지난 3일 ‘행정·공공기관 이전 계획 및 공공기관 기능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수도권 공공기관 350여 곳의 잔류 기준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이전 기관은 기존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직접 배치하며, 중앙행정기관은 세종을 중심으로 이전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2019년 153개 기관의 1차 이전이 마무리된 이후 여러 정부에서 구호로만 맴돌던 2차 이전이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발표가 나오자마자 지자체마다 몇 개 기관을 가져올 것인가를 두고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다.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는 핵심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추진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심화했다. 수도권 인구는 이미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혁신도시는 주중에만 불이 켜지는 도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는 기관을 옮기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었을 뿐, 기관과 함께 뿌리내려야 할 산업과 기업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무를 옮겨 심으면서 뿌리 내릴 흙은 챙기지 않은 셈이다. 지역마다 기관 수를 고르게 맞추는 나누어 먹기식 배분은 형평의 외양은 갖추었지만 지역 발전의 동력이 되지는 못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다른 길을 보여준다. 세종이 아니라 항만·해운·조선·수산 산업이 모여 있는 현장으로 부처가 옮겨감으로써 정책 당국과 산업, 관련 기관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방식을 연관 부처로 넓혀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는 대전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신재생에너지의 메카인 광주·나주로, 재정경제부는 금융중심지인 부산으로, 산업통상부의 산업 기능은 제조업 기반의 대구로 옮기는 방식이다. 그리고 각 부처 산하 공공기관도 다시 재배치해 부처와 공공기관, 기업이 함께 움직이는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 결정권을 가진 부처와 집행 기관이 한곳에 있어야 기업도 따라 움직인다.
특히나 국제무역과 통상 기능은 국제공항이 있는 인천으로 보내는 것이 합리적이다. 통상 협상과 무역 지원은 해외 정부·기업과의 잦은 왕래가 업무의 핵심인 만큼, 세계로 열린 관문 곁에 있을 때 효과가 가장 크다. 인천이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한다면 이는 또 하나의 기계적 형식주의일 뿐이다. 이전의 기준은 수도권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기능이 어디에 있을 때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느냐여야 한다.
더불어 배치는 전국에 흩뿌리는 방식이 아니라 수도권에 대응할 메가시티를 만드는 차원에서 3~4개 핵심 거점도시에 집중해야 한다. 동남권의 부산, 대경권의 대구, 호남권의 광주·나주와 전주, 충청권의 대전이 그 축이 될 수 있다. 미국이 뉴욕 하나가 아니라 LA와 시카고라는 성장축을 함께 가지고 있듯, 한국에도 서울에 견줄 만한 도시가 나와야 한다. 서울의 성장이 경기와 인천으로 번지며 수도권 전체를 키웠던 것처럼, 핵심 거점도시가 먼저 자리를 잡으면 그 파급효과는 인근 지역으로 확산할 것이다. 모든 지역에 조금씩 나누어 주면 어느 곳도 임계점을 넘지 못한다.
물론 부처가 흩어지면 세종에 모여 얻는 집적효과가 사라진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화상회의는 이미 공직사회의 일상이 되었고, 세종 공무원들이 국회와 서울을 오가느라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무엇보다도 정책의 품질을 좌우하는 것은 부처 간 대면 회의보다 관련 산업계와 공공기관,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담으려면 부처가 현장 곁에 있어야 한다. 책상 앞에서 만든 탁상행정의 한계를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실감해 왔다.
이를 위해 세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정부 부처 이전과 산하 공공기관 이전을 하나의 묶음으로 설계해야 한다. 부처는 세종이 아니라 연관 산업이 모인 거점도시로 옮기고, 산하 공공기관도 부처를 따라 같은 도시로 모아야 한다. 1차 이전으로 이미 여러 지역에 흩어진 산하기관도 재배치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부처와 공공기관이 따로 떨어져 있으면 기업이 옮겨 갈 이유가 없다. 정책을 만드는 부처와 이를 집행하는 공공기관, 현장의 기업이 한 도시에 모일 때 비로소 산업 클러스터가 작동한다.
둘째, 혁신도시가 아니라 이미 기반시설을 갖춘 구도심으로 이전해야 한다. 허허벌판에 새 도시를 짓는 방식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원도심의 인구와 상권을 빨아들여 지역 내부의 쇠퇴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구도심으로의 이전은 비용을 줄이면서 쇠퇴한 도심을 되살리고, 발전의 효과가 그 지역 주민에게 온전히 돌아가게 하는 길이다. 셋째, 한꺼번에 옮기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한 부처와 연관 공공기관, 해당 지역을 묶어 시범적으로 먼저 이전하고, 효과가 검증되면 확대해도 늦지 않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국가 단위로 한꺼번에 밀어붙이면 되돌릴 수 없는 시행착오가 따르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2차 이전은 규모로 보아 사실상 마지막 기회에 가깝다. 기관 수를 나누는 산술이 아니라 산업이 뿌리내릴 숲을 가꾸는 설계여야 한다. 세종 집중과 혁신도시 분산이라는 지난 20년의 방식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실증적 근거 위에서 효과 있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올해 4분기 최종 계획 확정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그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박형준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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