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여성, 산과 바다… ‘영원의 색’ 갈망한 색채의 대가

윤수경 기자
수정 2026-10-14 20:37
입력 2026-10-14 20:37
석파정 서울미술관 임직순 30주기 특별전
대상에 애정 담아 색채 쌓아 올려자연과 생명의 본질 화폭에 남겨
관심 못 받던 풍경화 매력 재발견
연대별 조망, 미완성 유작 첫 공개
“자연이 보여주는 어느 순간의 색이 아니라, 본질적인 색깔을 갖고 싶다.”
‘색채의 대가’로 불린 임직순(1921~ 1996) 화백은 평생 여성과 꽃, 산과 바다를 그리며 색을 탐구했다. 그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의 재현을 넘어, 결코 변하지 않는 ‘영원의 색’에 가닿고자 했다. 화업 내내 색채에 대한 치열한 구도를 이어간 그의 1960~1990년대 작품을 연대기별로 조망하는 전시가 가을과 함께 찾아왔다.
서울 종로구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임직순 작고 30주기를 맞아 그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돌아보는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전을 개최한다.
한국 구상회화를 대표하는 임직순은 일본에서 유화를 공부한 뒤 195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25회에 이르는 개인전을 열며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충북 괴산군 출신인 그는 1961년 조선대 교수로 부임하며 전남광주에 정착해 호남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1973년에는 개인전을 위해 1년간 프랑스 파리에 머물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파리 전시의 포스터를 비롯해 거리에서 스케치한 풍경과 판화, 전시 대표작이었던 ‘사념’ 등을 만날 수 있다.
그에게는 늘 ‘꽃과 여인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꽃과 함께 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여인의 초상을 유독 많이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이 별칭 너머, 그의 작품 세계를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인 ‘풍경화’에 집중한다.
김현주 전시기획팀장은 “임직순은 대상에 애정을 듬뿍 담아 화면을 구성하고 색채를 쌓아 올리는 데 탁월한 작가”라며 “그의 예술이 점차 잊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관람객이 전통적인 소재에서 오히려 더 깊은 공감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인 좌상과 꽃 정물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풍경화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진적으로 무르익었다. 1960년대 광주에 정착한 그는 남도의 풍경과 무등산을 마주하며 시선을 자연으로 넓혔고, 특유의 따뜻한 정서와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냈다. 1970년대 파리 체류 시기에는 인상주의를 접하며 대상을 향한 시선이 한층 깊어졌다. 단순히 풍경을 모사하는 것을 넘어 대상과 마주하며 느낀 내면의 감정과 본질을 화면에 응축하고자 했다.
작업이 가장 왕성했던 1980년대에는 자연 소재의 범위를 넓히는 한편, 기존 모티프였던 여인과 꽃 역시 색과 선, 붓질이 빚어내는 조형적 조화의 관점에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1988년부터 이어진 신장병 투병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1990년대에 이르러 대상의 형태와 설명적 요소를 과감히 덜어내고 자연과 생명의 본질을 화폭에 남겼다.
전시장 입구는 작가가 생전 사용했던 가구와 소품들로 꾸며져 실제 작업실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인물 좌상을 그릴 때 애용했던 라탄 안락의자의 실물도 만날 수 있다. “화가란 하루 100장의 스케치를 해야 한다”는 입버릇을 실천했던 작가답게, 전시장 곳곳에서는 그가 남긴 방대한 스케치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시 말미에 걸린 노란 바탕의 ‘소나무가 있는 풍경’을 완성하기 위해, 1980년대 후반부터 작고 직전인 1996년까지 두 그루의 소나무를 반복해서 그린 스케치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전시의 마지막은 최초 공개되는 미완성 유작이 관람객을 배웅한다.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윤수경 기자
세줄 요약
- 임직순 작고 30주기 맞아 서울미술관 전시 개최
- 꽃·여인·풍경 통해 영원의 색 탐구한 화업 조망
- 풍경화 재발견과 미완성 유작 첫 공개로 주목
2026-10-1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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