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조선 양반들의 ‘한글 생활’

서동철 기자
수정 2026-10-09 02:05
입력 2026-10-08 21:30
‘소학’(小學)은 유교적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수신서다. 중국에서 들여와 어린 세대 교육에 널리 쓰였다. 김전과 최숙생은 1518년 10권짜리 ‘번역소학’을 펴냈다. 번역본을 내놓았다는 것은 읽을 사람들이 해당 문자를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1587년 나온 ‘소학언해’는 구조와 의미를 좀 더 충실하게 한글로 다듬은 것이다.
‘소학’에 그치지 않았다. 논어·맹자·대학·중용도 언해본이 잇따라 출간됐다. 학문 수준이 높아진 이들에게도 우리말 해설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세종대왕은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강조했지만, 양반 선비들에게도 한글이 매우 유용했음을 알려준다.
당나라 두보의 시를 번역하고 해설한 ‘두시언해’는 일찌감치 1481년 편찬됐다. 문학 작품, 특히 운문인 한시는 원문을 읽는 것만으로는 더욱 의미와 정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이 1446년이니 그 직후다. 그럼에도 이미 양반층 대부분이 한글을 능숙하게 이용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정철(1536~1594)의 ‘송강집’에는 ‘시골집에 있는 언해두시를 가지고 오는 것이 좋겠다’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한글 해설을 존중하는 고위직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관동별곡’과 ‘사미인곡’을 지은 것도 우리글이 문학적 표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경험의 결과였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 집안에는 85건의 한글 편지가 전한다. 추사가 부인에게 보낸 것이 많지만 벼슬이 종1품에 이르렀던 아버지 김노경의 편지도 적지 않다. 안부를 묻는 정도가 아니라 집안 살림에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한글이 지체높은 집안에서도 ‘생활 문자’로 활발하게 쓰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오늘은 580돌 한글날이다. 조선 후기, 한자를 ‘공적 문자’로 쓰기는 했지만 ‘한글의 암흑기’는 아니었다. 양반사회가 한글을 적극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더 많이 발굴됐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2026-10-0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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