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고 싶은 문장]
수정 2026-10-08 23:24
입력 2026-10-08 23:24
세줄 요약
- 근대 경성 수영장 배경 소녀의 꿈과 저항
- 타자를 향해 확장되는 시집의 언어 실험
- 조선 말기 궁녀 선발전 속 채달금 생존기
푸울에 풍덩(이재은 지음, 소원나무)
한여름인데도 맨발이 시렸다. 고무신을 찾아 신고 우물에서 물을 퍼 올려 발에 쏟아부었다. 찰박찰박 젖은 발을 꼬물거렸다. 축축한 발의 감촉이 익숙했다. 버석버석하게 마른 채로 살기 싫었다. 내가 원하는 꿈에 젖고 빠진 채로 살아가고 싶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빠질 수 있을까.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치는 익수가 아니라, 스스로 숨을 참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잠수를 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더 깊게, 멀리.
근대를 배경으로 수영선수를 꿈꾸는 열다섯 살 소녀 하도란의 삶을 그렸다. 1930년대 경성 거리와 근대식 수영장 풍경을 사실감 있게 담아낸다. 도란은 시대와 출신, 가족에 얽매인 삶에서 놓여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역사적 격변기에서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이야기. 248쪽, 1만 6800원.
다 좋다는 느낌(김승일 지음, 아침달)
잘 있으십니까? 거기도 폐허겠죠. 그래도 거기서는 아무도 원래의 모양을 따지지 않을 거라고. 당신은 그래서 바깥으로 가는 거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한동안 나도 거기를 사랑했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이것은 종이입니다.
희귀한 목소리로 새로움을 갱신해 온 시인 김승일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사고실험, 청소년 시를 쓰며 끌어올린 자유로운 상상력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나’라는 틀을 벗어나 내가 아닌 타인을 해체하며 완벽하게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를 시도한다. 완결된 세계를 넘어 타자를 향해 무한히 열린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172쪽, 1만 2000원.
채달금전(서귤 지음, 위즈덤하우스)
첫째는 사모하는 마음, 둘째는 묽은 똥, 셋째는 재채기. 엣취 잇취 얏취 욧취, 채달금이 재채기로 아주 풍악을 울리는구나. 간신히 진정하여 기색을 살피니 다행히 인적 없는 관문당이라 들은 이는 없는 모양. 굴러떨어진 간담을 주워다가 호호 불어 배때기에 때려 넣는데 귀때기에 수상한 소리가 파고들었다.
‘디 아이돌’, ‘삼국평화고등학교 테러 사건’으로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입담을 선보여온 서귤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열강의 침략과 개화의 물결로 혼란스러운 조선 말기, 목숨을 위협받는 명성황후의 호위 궁녀 선발전이 열린다. 난다 긴다 하는 조선 팔도 여걸들 속에 끼어있는 16세 채달금의 재주는 기가 막힌 잔머리. 조선에서 으뜸으로 질긴 달금의 파란만장 생존기가 구수한 판소리 어법으로 펼쳐진다. 252쪽, 1만 8000원.
2026-10-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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