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뚜껑에 새긴 편지… 간송이 후대에 전하는 마음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수정 2026-10-07 01:36
입력 2026-10-07 01:36

간송미술관 ‘상서 컬렉션을 읽다’

‘오동나무’ 상자에 문화유산 보관
뚜껑 위에 유물에 담긴 이야기 남겨
당대 최고 감식가들 글씨로 기록

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 등 눈길
“유물·상서 짝지어 첫 대규모 전시”
이미지 확대
김시의 ‘선록완월’.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김시의 ‘선록완월’.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아버님(간송 전형필)께서 먼 훗날의 우리에게 남기신 조용한 편지이자 문화에 대한 믿음의 증언입니다.”(전영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

간송 전형필(1906~1962)은 1930년부터 일본으로 유출되던 우리 문화유산을 사비를 털어 사 모았다. 그리고 그 유물에 담긴 이야기가 후대에 온전히 전해지도록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하며 뚜껑 위에 당대 최고의 감식가들의 글씨로 기록을 남겼다. 유물과 유물을 품은 상자 위의 기록을 나란히 만날 수 있는 전시, ‘상서(箱書), 컬렉션을 읽다’가 7일부터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열린다.

간송미술관은 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유물과 상서가 나란히 짝을 지어 대규모로 출품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2024년 보화각 재개관 이후 간송 컬렉션의 구축과 형성 과정을 재조명해 온 3개년 기획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상서’는 본래 일본 무로마치 시대에 중국에서 수입한 다기(차를 달이고 마시는 데 쓰는 도구와 그릇)의 진위와 격식을 판정하던 감식 문화에서 비롯됐다.

1910년대 이후 근대적 고미술 유통망이 형성되며 조선 시장에도 유입된 이 관행을, 간송은 스승이자 서예가였던 위창 오세창(1864~1953) 등 당대 최고 권위자들의 엄정한 감식을 결합해 간송 컬렉션 고유의 수장 체계로 승화시켰다. 유물을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한 건 오동나무가 습기 조절과 방충·방부 효과가 뛰어나고 단열성이 우수해 미술품 보관에 최적화된 재료이기 때문이다. 상자 하나를 제작하는 데 든 비용만 해도 쌀 수십 가마니에 맞먹는 20~200원이었다.

이미지 확대
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이미지 확대
‘낭원투도’가 담겼던 오동나무 상자와 그 위에 쓴 위창 오세창의 상서. 상서에는 ‘동방만천투도도’라고 적혀 있는데, ‘(전설 속 신선인) 동방삭이 선도복숭아를 훔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낭원투도’가 담겼던 오동나무 상자와 그 위에 쓴 위창 오세창의 상서. 상서에는 ‘동방만천투도도’라고 적혀 있는데, ‘(전설 속 신선인) 동방삭이 선도복숭아를 훔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보화각 2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와 작품이 담겨 있던 오동나무 상자가 나란히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작품은 3000갑자(18만년)를 산다는 동방삭이 전설 속 곤륜산에 있다는 서왕모의 낭원에서 선도복숭아를 훔쳐 도망가는 장면을 그렸다. 오세창은 바깥 상서에 ‘김단원의 동방만천투도도’라고 적었는데, 여기서 만천은 동방삭의 자(본이름 외에 부르는 호칭)다. 안쪽 상서에는 ‘단원 인물화의 걸작으로 근래 보기 드문 가품(佳品)이다’라고 평하며 작품에 대한 찬사를 남겼다.

이미지 확대
추사 김정희의 ‘직성수구’.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추사 김정희의 ‘직성수구’.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30대 중반 추사 김정희의 역동적인 필치가 느껴지는 ‘직성수구’ 역시 오세창의 상서와 함께 전시된다. ‘곧은 소리와 빼어난 구절’이란 뜻의 이 작품은 추사가 1820년 무렵 청나라 문인 고순에게 직접 지어 보낸 시다. 황제에게 직언했다가 관직에서 물러난 고순의 강직한 기상을 칭송하는 내용을 담았다. 고순에게 전해졌던 이 작품은 훗날 중국의 한 수장가를 거쳐, 우연히 베이징을 방문했던 육당 최남선의 매부 박석윤이 구매하게 된다. 이후 간송이 이를 입수하자, 1939년 겨울 오세창은 상자 위에 ‘추사가 고순에게 증정한 오언대련을 어떤 이가 북경 시장에서 샀는데, 결국 전형필의 보화각 소장품이 됐으니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다’라고 적으며 감회를 표했다.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은 “오동나무 상자가 남아 있는 작품 700여점 중 상서가 기록된 258점은 굳이 글로 남길 만큼 중요한 서사를 품고 있는 작품들”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간송과 함께했던 이들이 문화유산을 대했던 태도와 철학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수경 기자
세줄 요약
  • 간송미술관, 유물과 상서 짝지은 전시 개막
  • 오동나무 상자에 남은 감식가들의 기록 조명
  • 김홍도·추사 작품과 상자 함께 공개
2026-10-07 1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내안의 AI 본성 분석 :
UNMASK ]
기사 읽는 습관에 숨겨진 당신의 MBTI는?
기사 반응 MBTI 확인
Q.
기사를 다 읽으셨나요? AI 퀴즈로 핵심 점검!
간송이 문화유산을 보관한 상자의 재료는?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