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부치지 못한 편지

윤수경 기자
수정 2026-10-02 01:00
입력 2026-10-02 00:08
돌연 전달된 ‘피터팬 아빠’ 부고
모든 피터팬 위한 ‘네버랜드’ 꿈
재단 설립 위기 넘긴 후원 기적
“지켜보는 것”으로 사과 대신해
가방 속에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이 있다. 봉투 안에는 신문 한 부가 고이 접혀 있다. 수신자는 ‘피터팬 아빠’로 세상에 알려진 고 전경철 작가다. 지난여름, 그와 나는 ‘안녕, 피터팬’의 작가와 기자로 만났다. 얼마 후 서울신문에 그의 인터뷰가 실렸고, 기사를 카카오톡으로 공유하자 그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해 왔다. 사진기자가 찍은 인터뷰 사진도 퍽 마음에 들어했다. 신문의 실물을 보고 싶어 하던 그에게 나는 우편으로 부쳐 주겠노라 약속했다.하지만 일이 많다는 핑계로, 게으름으로 우체국 걸음을 차일피일 미루던 사이, 돌연 그의 부고가 들려왔다. 신문이 담긴 편지는 그렇게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됐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때 찾아갔던 그의 집은 참 정갈했다. 시장 골목 안에 있어 낮에는 시끄럽고 밤에는 고요해지던 그 집을 그는 ‘네버랜드’라 불렀다. 27세 청년이지만 지능은 2~3세에 머문 중증 자폐 아들을, 이웃에 피해 주지 않고 키우기에 그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동화 속 인물에 빗대 아들을 ‘피터팬’이라고 불렀다. 고단한 돌봄을 이어 가는 자신을 향한 위로이기도 했다.
지난해 4월 3일 그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길어야 6개월이라는 시한부 삶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떠난 뒤 홀로 남겨질 아들을 위해, 전국 1000여 곳의 시설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90% 이상이 상담을 거부했고, 어렵게 입소한 곳에서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절망의 끝에 선 그는 글쓰기 플랫폼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우리 아들을 기억하고 지켜봐 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그의 간절함은 기적을 불렀다. 사연이 방송에 소개되고 아들은 지난 3월 충북 제천의 한 시설에 기적처럼 안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은 안전한 곳을 찾았지만, 세상에는 오갈 데 없는 또 다른 피터팬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네버랜드는 시장 골목 안 다세대주택을 넘어, 부모 없이도 중증 장애인들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로 커져 있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의 인세와 방송 수익 모두를 ‘피터팬 재단’ 설립 기금으로 내놓으며 절박하게 매달렸다. 인터뷰 내내 보인 재단 설립을 향한 그의 의지는 놀랍도록 뜨겁고 단단했다.
병원이 예상한 시간보다 1년을 더 버텨낸 그는 지난달 영면에 들었다. 그의 유해는 선산과 아들이 있는 공동체 마을 나무 밑에 나뉘어 안장됐다.
그가 떠난 뒤 피터팬 재단 설립은 한때 위기를 맞았다. 재단법인 설립을 위한 기초 재원 요건인 5억원에 후원금이 턱없이 모자라, 자칫 모든 후원금을 반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자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2000원을 꾹꾹 접어 보낸 학생부터 자녀의 이름으로 동참한 부모, 부족한 금액을 채우겠다며 나선 익명의 후원자까지 온정이 쏟아지며 당초 목표였던 5억원을 훌쩍 넘어 7억원 이상이 모였다. “동화가 멀리 있지 않다. 이 세상은 놀랍도록 따뜻하다”던 그의 말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한 아버지가 27년간 오롯이 짊어져야 했던 돌봄의 무게 앞에 국가도 화답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달 10일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추진방안’을 발표하며, 부모의 고령이나 질병 등으로 돌봄이 어려울 때 평일에만 제공되던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주말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에게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가시는 이제 그의 마지막 꿈이 실현되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봐 달라는 당부로 다가온다. 그가 꿈꿨던 네버랜드가 첫 삽을 뜨고, 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존엄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이 약속이 앞서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사과가 될 수 있길 바라 본다.
윤수경 문화체육부 기자(차장급)
2026-10-02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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