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인 “한국, 난징대학살 사과 안해?”…SNS로 번진 한·우 갈등 [밀리터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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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수정 2026-09-30 13:11
입력 2026-09-30 11:21
세줄 요약
  • 북한군 포로 송환 공개 뒤 한·우 SNS 설전 확산
  • 난징대학살 사과 요구에 역사 왜곡 논란 증폭
  • 한국전 참전 기록과 대우크라 지원도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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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포된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공개 과정을 두고 한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신경전이 소셜미디어(SNS)로 번졌다.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포된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공개 과정을 두고 한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신경전이 소셜미디어(SNS)로 번졌다.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포된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공개 과정을 두고 한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신경전이 소셜미디어(SNS)로 번졌다.

29일 우크라이나의 한 누리꾼이 엑스(X) 계정에 올린 게시글이 한국과 중국, 일본 누리꾼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A씨는 “그건 그렇고, ×× 한국 놈들은 난징대학살에 대해 대체 언제 중국에 사과할 건데?”라는 글을 올렸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12월 일본군이 당시 중화민국 수도 난징을 점령한 뒤 약 6주간 포로와 민간인을 집단 학살하고 대규모 강간·약탈을 저지른 사건이다. 희생자 수는 중국 정부 추산 약 30만명이고,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전범재판)에서도 20만명 이상으로 판단할 정도로 대규모 학살이 저질러졌다.

일본군이 중국을 상대로 저지른 비인도적 전쟁범죄의 책임을 뜬금없이 한국에 묻자 한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 누리꾼들까지 나서서 A씨를 질타했다.

중국인 이용자는 “???”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난징대학살이 언제부터 한국인들과 관련이 있었느냐. 처음부터 끝까지 이건 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한 짓이다. 너 역사 공부를 일본에서 배운 거냐”고 물었다.

A씨의 난데없는 게시글은 다른 우크라이나 이용자 B씨가 이재명 대통령의 글을 원색적인 욕설로 맹비난한 데서 시작됐다.

北포로 송환 공개에서 비롯된 한·우 누리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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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포된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공개 과정을 두고 한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신경전이 소셜미디어(SNS)로 번졌다. 엑스(X) 캡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포된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공개 과정을 두고 한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신경전이 소셜미디어(SNS)로 번졌다. 엑스(X) 캡처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24일(한국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을 최근 한국에 보냈다고 전격 공개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X에 글을 올려 우크라이나가 비공개 합의를 어기고 포로 송환 사실을 공개했다면서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나 많이 아쉽다”고 비판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북한 포로 국내 송환 문제는 외교, 안보, 한반도 정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예민한 의제”라며 “공개로 생길 여러 문제를 생각할 때 비공개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타당했고 그렇게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우크라이나 이용자 B씨는 이 대통령의 글을 인용하며 “×× 배은망덕한 ×××. 우크라이나는 혼자 힘으로 너희의 적과 싸우며, 한국을 공격할 수도 있었던 북한군 수천명을 없애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건 늘 야스쿠니니 포로니 하는 한심하고 쩨쩨한 불평뿐이다. 머지않아 미래가 너희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를 두고 한국인 이용자 C씨는 “배은망덕? 우크라이나가 한국에 해준 게 뭔데? 한국전쟁 때 소련이랑 침략했던 거?”라며 “우크라이나 자국민들도 징집당하기 싫어서 사방팔방 도망이나 다니는 주제에 감히 다른 나라에 참전하라고 협박을 해?”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니들이 야스쿠니에서 기도한 뒤로 한국의 신들은 너희를 버렸어”라며 “일본한테 가서 계속 빌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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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포된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공개 과정을 두고 한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신경전이 소셜미디어(SNS)로 번졌다. 엑스(X) 캡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포된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공개 과정을 두고 한국과 우크라이나 간의 신경전이 소셜미디어(SNS)로 번졌다. 엑스(X) 캡처


우크라이나 이용자 A씨는 한국인 C씨의 ‘우크라이나의 한국전쟁 참전’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난징대학살과 무관한 한국을 끌어들여 반박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중국인 이용자의 “한국은 난징대학살과 관련 없다”는 댓글에 “C씨가 한국전쟁을 우크라이나 탓으로 돌린 순간부터 문제였다. (한국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련 제국주의가 벌인 일인데, 왜 C씨가 아니라 나한테 따지느냐”고 항변했다.

우크라, 한국전 소련군 참전자 보훈 대상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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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4월 한국 상공에서 미 공군(USAF)의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를 공격하기 위해 선회해 들어오는 미코얀-구레비치 MiG-15 전투기 3대. 이 임무는 소련 공군(VVS)의 정예 부대에 맡겨졌다. 1951년 4월에는 2차대전 연합국 최고 에이스인 이반 코제두브 대령의 제324전투비행사단(IAD)이, 이후에는 같은 해 6월 한국에 도착한 게오르기 A. 로보프 장군의 제303전투비행사단이 이 임무를 수행했다. 이어진 손실로 미 공군은 1951년 10월 이후 B-29를 야간 폭격에만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미 공군 박물관 제공
1951년 4월 한국 상공에서 미 공군(USAF)의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를 공격하기 위해 선회해 들어오는 미코얀-구레비치 MiG-15 전투기 3대. 이 임무는 소련 공군(VVS)의 정예 부대에 맡겨졌다. 1951년 4월에는 2차대전 연합국 최고 에이스인 이반 코제두브 대령의 제324전투비행사단(IAD)이, 이후에는 같은 해 6월 한국에 도착한 게오르기 A. 로보프 장군의 제303전투비행사단이 이 임무를 수행했다. 이어진 손실로 미 공군은 1951년 10월 이후 B-29를 야간 폭격에만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미 공군 박물관 제공


각국 정부나 유엔 등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인정한 국가 중에 우크라이나가 명시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러 기록에서 우크라이나가 한국전쟁 당시 소련 편에 섰던 사실은 남아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연방(소련)의 구성공화국인 우크라이나 SSR(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는데, 유엔에서 소련과 별도로 의석을 갖고 있었다.

1950년 11월 3일 ‘평화를 위한 단결’ 결의 표결에서 우크라이나 SSR은 반대(소련 지지)표를 던졌다. 또 1951년 2월 1일 한국전에 참전한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한 결의에서도 우크라이나 SSR은 반대표를 던졌다.

게다가 당시 소련은 제64전투비행군단을 만주에 배치해 북한과 중국의 제공권을 지원했다. 소련은 참전을 선언하지 않았고 참전 사실도 부인했지만, 사실상 비공식 참전국이었다.

이때 우크라이나 SSR도 조종사를 파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참전한 소련군 조종사 중 세르게이 크라마렌코는 우크라이나 태생이다. 다만 그는 2020년 러시아에서 사망했다.

특히 소련이 해체되고 1991년 8월 연방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1994년 내각 결의를 통해 참전용사법 적용 대상에 한국전쟁 참전 군인을 포함했고, 지금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결의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1950년 6월~1953년 7월 북한 전투에 참가한 소련 부대와 하위 부대에 속한 자’를 보훈 대상으로 인정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정부 콜센터의 전투참가자 지위 부여 안내에서도 현행 근거 법령으로 인용되고 있다.

한국, 개전 직후부터 우크라이나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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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한 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26.7.8 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2022년 개전 직후부터 인도적 지원과 비살상 군수물자 지원, 재건 차관, 유엔 표결과 대러 제재 참여로 우크라이나를 지원·지지해왔다.

2022년 2월 28일 한국 외교부는 1000만 달러 긴급 지원을, 4월 7일에는 3000만 달러 추가 지원을 발표했다. 같은 해 6월에 다시 5000만 달러를 더해 누적 기여액은 1억 달러가 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3년 7월 키이우 방문 당시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발표하며 1억 5000만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23억 달러 패키지’를 내놨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올해 3월에도 정부는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을 위해 유엔난민기구(UNHCR)에 1500만 달러를 공여했다. 앞서 2024년에도 같은 목적으로 500만 달러를 보낸 바 있다.

지난 7월 이 대통령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회담하면서 1억 달러 규모의 포괄적 지원을 약속했다.

우리 정부는 개전 직후부터 방탄헬멧과 방탄조끼, 의약품, 전투식량, 방독면 등 비살상 군수물자를 지원했다.

또 비공식이지만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는 미국에 포탄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우회적으로 포탄 공급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각국 지원을 얻어내려는 과정에서 일본을 상대로 한국의 국익에 배치되는 외교 행보를 이어가기도 했다.

2024년 9월 세르기 코르슨스키 당시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는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참배일인 9월 3일은 중국이 지정한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이었다. 당시 중국은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국에 대한 결례로 규정했다. 참배 사진 등을 올렸던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은 논란이 커지자 문제의 게시물을 삭제했다.

같은 달 코르슨스키 대사는 독도를 ‘다케시마 영토 분쟁’으로 표기한 일본 방위성 지도를 개인 SNS에 올리기도 했다.

또 우크라이나 정부는 파시즘의 상징으로 히틀러·무솔리니와 함께 히로히토 일왕을 꼽은 공식 SNS 영상에서 일왕만 삭제한 수정본을 다시 올려 일본의 눈치를 본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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