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강래의 도시 톡] AI 시대, 산업단지 판을 완전히 다시 짜야
수정 2026-09-24 00:07
입력 2026-09-23 19:52
전국에 산재한 산업단지와 특구
초광역권이란 큰 공간으로 엮고
AI 인프라, 실증, 연계 강화해
‘산업혁명의 플랫폼’ 지향해야
전국 기초자치단체는 226곳이다. 산업단지는 그보다 훨씬 많은 1341곳에 이른다. 여기에 기회발전특구, 경제자유구역, 연구개발특구, 지역특화발전특구 등 각종 특구를 더하면 산업단지와 특구의 지정 건수는 2500건을 넘어선다. 기초자치단체 한 곳당 평균 10건이 넘는 셈이다.얼핏 들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기업이 들어갈 땅도 많고, 혜택을 주는 곳도 많으니 좋은 것 아닌가.’ 하지만 모두가 특별한 혜택을 내걸기 시작하면 특별함은 그 의미를 잃는다. 기업과 투자 수요는 한정돼 있는데 유치 경쟁만 갈수록 치열해진다. 곳곳에서 산업단지 미분양이 생기고, 기업을 유치해도 공장의 가동률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집적경제가 약해진다는 데 있다. 산업단지의 존재 이유는 기업이 서로 모여 있어서 생기는 효과다. 비슷한 회사들이 모여 있어야 사람 구하기도 쉽고, 기술과 정보도 오가고, 생산 인프라도 나눠 쓸 수 있다.
며칠 전 한국산업단지공단 콘퍼런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산업단지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과 함께 흩뿌려진 특구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기능도 예전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과거에는 땅, 도로, 인건비, 물류가 중요했다. 이제는 전력, 데이터, 인공지능(AI) 인프라, 실증공간, 전문인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한다. 기존 공장에 AI 프로그램을 잘 집어넣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공장에 AI 프로그램 하나 설치한다고 AI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설비에서 데이터를 뽑아내고, 숙련자의 암묵지를 디지털화하고, AI가 제안한 것을 실제 공장에서 시험하고 다시 학습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는 개별 기업이 혼자 갖추기 어려운 데이터 인프라, 실증시설, 전문인력, 시험인증 기능도 필요하다. 산업단지 차원에서 이런 기능을 함께 갖춰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신규 산업단지를 또 만들어야 할까. 물론 반도체나 데이터센터처럼 전력, 용수, 통신 인프라를 대규모로 새로 깔아야 하는 산업은 기존 산단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새로 ‘AI 산업단지’를 만들자는 얘기는 아니다. AI 시대의 더 큰 과제는 지금 돌아가고 있는 자동차, 기계, 전자, 화학, 부품산업의 공정을 AI로 바꾸는 데 있기 때문이다. 새 산업을 담을 신규 단지도 필요하지만 이미 돌아가고 있는 수많은 공장을 어떻게 바꾸고 연계시킬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한 과제다.
기존 산단에는 이미 기업이 있고, 숙련인력이 있고, 협력업체와 오랫동안 쌓인 생산 노하우가 있다. 문제는 지금의 산업단지가 대부분 제품을 만들어 내는 ‘생산’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AI 시대에는 여기에 ‘실증’ 기능이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한다. 실증이란 새로운 기술을 실제 공장에 넣어 돌려보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특히 피지컬 AI에서는 이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실증할 곳을 만들지 않으면 기존 생산단지도 활성화되기 힘들다”는 말까지 나왔다.
국토연구원 유현아 박사의 지적도 그래서 귀에 들어왔다. “제가 지역 산업현장에서 여러 분을 만나 보니 산업단지나 생산공간이 부족하다고 한 분은 한두 분뿐이었어요. 대부분은 인재, 실증, 규제 그리고 서로 연결이 안 되는 게 더 문제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새 산단부터 만들기 전에 지금 있는 산단으로는 기업이 원하는 조건을 정말 맞출 수 없는지부터 따져 봐야 합니다.” 여러 기능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도 안 되는 곳에 신규 산업공간을 만드는 것이 순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전국에는 2500건이 넘게 지정된 산업단지와 특구가 흩어져 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 공간들을 초광역권이라는 큰 공간에서 다시 엮고 생산과 실증, 연구와 인재 양성의 역할을 다시 나누는 일이다. AI 기술이 전 세계를 압도하는 격변의 시대에 산업입지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기업이 얼마나 빨리 투자하고, 실증하고, 생산하게 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이제는 산업단지를 생산공간을 넘어 ‘산업혁명의 플랫폼’으로 바라볼 때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2026-09-2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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