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도 모른 채 80년… 추석은 ‘그리움의 날’
김숙경씨 “명절에 아버지와 언니가 있었다면”
박승범씨 “흥남 바닷가 아버지 기억 또렷해”
이산가족 신청자 13만명 중 생존자 3만명뿐
이재명 대통령 “남북이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
“요즘은 이산가족 안부를 묻는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명절만 되면 아버지 생각이 더 나요. 꿈에도 나옵니다.”
23일 ‘이산가족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이산가족 김숙경(83·여)씨는 오래된 흑백사진을 들여다보며 헤어진 지 80년이 다 된 아버지와 언니 이야기를 꺼냈다.
평안북도 의주군 위원면에서 태어난 김씨는 해방 직후 네 살 무렵 어머니와 언니들과 함께 서울로 내려왔다. 아버지는 고향집을 판 뒤 돈을 받으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일찍 시집간 셋째 언니와도 헤어졌다.
김씨에게 추석은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서,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헤어진 가족을 떠올리는 날이기도 하다. 그는 “명절에 셋째 언니를 만날 수 있다면 다른 가족들처럼 맛있는 것을 만들어 함께 먹고 싶다”고 말했다. 결혼한 뒤 남편 쪽 식구들이 많은 모습을 보면서는 “아버지와 언니가 있었다면 같이 이야기하고 서로 기댈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949년 아버지가 보내온 마지막 편지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편지에는 ‘세세한 말은 상면시에 설명하겠다. 부탁은 4인이 모두 무병하기만 기원한다. 내내 몸 보중하여라’고 적혀 있다. 김씨는 “첫째 언니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왔다”며 “마지막 편지를 보면 아버지가 가족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싶다”고 말하다 목이 메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이북에서의 어린 시절 기억은 또렷했다. 김씨는 아버지가 어린 딸에게 모래를 깔아 놓은 나무판 위에 한자를 써 주던 모습, 닭장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흩트린 뒤 한 줌 쥐어 건네던 모습, 옥수수를 잘 먹지 못하자 셋째 언니가 씹어 건네주던 모습을 떠올렸다.
김씨는 “셋째 언니가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명절만 되면 그리워지는 건 사실”이라며 “하늘에서 편히 계시라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이산가족의 날 문화행사에서 만난 함경남도 흥남시 출신 박승범(83)씨에게도 명절은 고향과 가족을 떠올리는 날이다. 7살이던 1950년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아버지는 전쟁 중 세상을 떠났고 삼촌과 고모는 피난길에 합류하지 못했다.
박씨는 “추석은 귀성 없는, 아픈 명절”이라며 “어머니는 매년 북쪽을 바라보며 아버지 제사를 지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와 흥남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조개를 잡아 끓여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함주군에 남겨진 친지를 생각하면 세월이 지나도 가슴이 저린다”고 했다.
여전히 많은 이산가족이 재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고령으로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다시 만날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이산가족 신청자 13만 4843명 가운데 생존자는 3만 2948명(24.4%)에 불과하다. 생존자의 66.6%는 80세 이상이다. 정부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도 2018년 8월을 마지막으로 8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산가족의 날 서면 기념사를 통해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더는 미룰 수도, 지체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유승혁·정회하 기자
세줄 요약
- 명절마다 더 짙어지는 이산가족의 그리움
- 80대 생존자 급감, 상봉 중단 장기화
- 남북이 우선 해결할 과제로 재차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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