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관·국회의원 겸직, 필요할까
수정 2026-09-16 00:51
입력 2026-09-16 00:51
제헌헌법·유신헌법에서 겸직 허용
성숙한 민주주의에선 명분·실리 無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유물
지난 5월 7일 여당 주도로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야당의 불참으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참여하지 않아 불성립되었지요. 이후 국회의장이 다시 표결을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여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처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홉 차례의 개정을 거쳐 1987년 6·10 민주항쟁을 계기로 같은 해 10월 29일 마지막으로 개정이 되었지요.우리나라 역대 헌법은 4·19 민주혁명 이후 개정되어 약 1년여간 시행된 제2공화국을 제외하면 모두 대통령제 통치 형태를 채택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를 취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독특한 형태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국회의원이 행정 각부의 장관을 겸직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대통령제는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미국이 1787년 헌법을 제정하면서 발명한 제도입니다. 영국식 군주제를 배격하고, 권력분립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미국 헌법제정자들은 대통령제에서 제일 중요한 원칙은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세 가지 권력이 견제와 균형을 갖추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가 예외 없이 장관과 의원의 겸직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대통령제를 발명한 미국에서 의원이 장관을 겸직할 수 없도록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겸직을 허용하게 되면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이 약화되거나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입법부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 중 하나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겸직을 허용하게 되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되어 이러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권력 집중의 문제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겸직을 하게 되면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자가 아닌 대통령과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권력이 행정부에 과도하게 집중될 위험이 커지는 것입니다. 겸직 의원은 권력에 대한 비판이나 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특히 비례대표 의원인 경우에는 대변해야 할 직능이나 소수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도 장관으로서의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어중간한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우려도 있습니다.
겸직 제도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협력을 통해 국정 운영이 부드러워진다는 현실적 실용성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나라들이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위험성에 주목해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역량을 갖춘 정치인들을 키워내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 있다 보니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임시정부 등을 통해 정치적 역량이 검증된 소수의 인원을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지요. 제헌헌법에서 겸직을 허용했던 이유입니다. 의원내각제의 제2공화국을 거쳐 제3공화국 시절에는 헌법으로 겸직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속칭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므로 강력한 대통령제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겸직을 허용하게 되었지요.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도 성숙한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훌륭한 정치인들도 많이 길러졌지요.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 계속되긴 하지만, 현실적 우위 속에 더이상 경쟁이 되지 않을 단계로 나아간 상태입니다. 의원과 장관을 겸직하는 명분도 실리도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개헌을 한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입니다.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전 수원지검 1차장
2026-09-1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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