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부부들이 만드는 따뜻한 세상 [정지욱의 창가에서 바라본 영화]
수정 2026-09-16 00:40
입력 2026-09-16 00:40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영화제는 영화를 매개로 한 축제다. 사람들과 영화가 모인다. 상영을 시작하면 모두가 스크린에 펼쳐진 꿈과 환상을 만끽하며 하나가 된다.
지난 7월 경기 부천시에서 열린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곳곳 영화인들이 반갑게 만나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영화를 즐겼다. 어떤 이들은 영화제 기간 내내 영화관에서 매일 마주쳤다. 어쩌다 만나 인사를 나눈 이들도 있지만 반갑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마주한 사람들 중 유독 나의 눈길을 끌었던 이들이 있다. 영화 ‘이웃집 좀비’와 ‘에일리언 비키니’로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오영두 감독과 장윤정 제작자였다. 오 감독의 신작 ‘스마일 찰스’(2026) 주연 배우 홍서백이 영화제에서 부천 초이스 코리안: 장편 한국영화배우협회 배우상, 부천 초이스 코리안: 장편 NH농협 배급지원상을 수상했다.
영화 ‘스마일 찰스’는 한국에서 무명배우였던 주인공이 포르노 출연으로 모든 걸 잃고 ‘스마일 찰스’라는 이름의 온라인 섹스 노동자로 숨어 지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길 담고 있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과 표정의 간극,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진 어색함이 그를 세상과 완전히 단절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200억원대 사기꾼 마리가 그의 삶을 파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프로듀싱은 장 제작자가 맡았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올해 초만 해도 이들 부부는 일 년 반쯤 해외에서 지내고 있었다. 장 제작자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들 부부의 태국과 유럽에서의 생활을 볼 수 있었다. 한 곳에서 한두 달 즐겁게 눌러 지내고, 여기저기 다니며 몸과 영혼의 자유를 누리는 모습을 보며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화 한 편을 찍어 뚝딱(물론, 감독 이야길 들어보니 외국 숙소에서 편집하며 수많은 고민과 노력이 투여됐다고 한다) 만들어 냈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영화계에는 영화인들이 부부로 연을 맺고 함께 활동하는 커플이 꽤 있다. 부부 배우는 물론 오 감독과 장 제작자처럼 부부가 함께 작업하는 이들도 꽤 많다. 대표적인 예가 얼마 전 영화 ‘오딧세이’로 내한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과 에마 토머스 제작자 부부다.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단순한 부부를 넘어 감독과 제작자로 꾸준히 활동했다. 부부는 놀런 감독 작품 대부분을 함께하고 있다. 전작 ‘오펜하이머’로 부부가 나란히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영화 ‘전교생’,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을 연출한 일본의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도 부인 오바야시 교코 제작자와 함께 평생 영화의 길을 함께 걸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등에 함께 내한했던 이 부부 영화인의 꼭 잡은 손이 기억난다.
지금은 제작자가 됐지만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이은 감독은 심재명 제작자와 함께 영화의 길을 걷고 있다. 류승완 감독도 강혜정 제작자와 함께 영화를 만든다. 젊은 영화인들 중에도 찾을 수 있다. ‘잠수금지’를 연출한 장현빈 감독과 ‘월드 프리미어’를 연출한 김선빈 감독이 부부로 각자의 작품 세계를 차곡차곡 채워 간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영화적 시도를 하며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오 감독과 장 제작자는 영화 ‘카라’(1999)의 현장에서 만났다고 한다. 당시 장 제작자는 분장팀장, 오 감독은 연출부였다. 둘의 사랑이 싹트며 여러 작품을 함께했고, 장 제작자가 오 감독의 연출작품에서 미술, 분장팀을 맡아 분투하다 언제부턴가 제작을 담당하게 됐다. 그리고 이번 ‘스마일 찰스’에서는 배우로 연기를 펼쳤다.
어찌 보면 가족끼리 ‘수작업’으로 작품을 만든 셈이지만, 우리는 장 제작자의 역할이 날로 다양해지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그만큼 서로 믿고 맡기며 마음껏 작품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해외에서 지내면서 사고의 내실을 채우며 자유로운 작품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부부에게 ‘영화의 꿈을 키우는 젊은 영화인 커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묻자 “저희가 무슨…”이라며 멋쩍어하더니 “그래도 뚝심 있게 작품을 이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들의 작품이 키득거리며 웃다가, 찔끔 눈물 머금고 빙긋이 미소 짓게 되는 따뜻한 작품들이라 생각했는데,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작품을 이어 나가는 일은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정지욱 제공
나와 아내도 영화인 커플이다. 나는 영화 평론을 하고, 아내는 일본어 시나리오 작업과 배우들의 일본어 연기 지도를 한다. 2009년 서울을 방문했던 오바야시 감독이 우리 부부에게 써 준 글이 있다. 부부영화인으로 영화를 통해 안온한 세상을 이루라는 의미로 “映画は、穏やかな一日を、創る”(영화는, 온화한 하루를, 만든다)라고 써 주신 글을 다시 꺼내 흐뭇하게 바라본다. 참으로, 영화로 따뜻한 세상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2026-09-16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THE NEXT : AI 운명 알고리즘 지금, 당신의 운명을 확인하세요 [운세 확인하기]](https://imgmo.seoul.co.kr/img/n24/banner/ban_ai_fortune_v2.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