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30만㎞ 전수조사했더니 진짜 길목은 딴 곳[사이언스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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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수정 2026-09-16 00:00
입력 2026-09-16 00:00
세줄 요약
  • 로마 제국 도로 29만9171㎞ 전수 계량 분석
  • 육상 이동의 핵심 길목은 로마가 아닌 연안도로
  • 안티오카·비잔티움·코린토스 중개지 우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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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프랑스 신학자이자 시인인 알랭 드 릴은 저서 ‘비유의 책’에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정확한 라틴어 원문은 “천 개의 길이 사람들을 영원히 로마로 이끈다”(Mille viae ducunt homines per saecula Romam)였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중심인 포로 로마노에 ‘밀리아리움 아우레움’이라는 기념비를 세우고 제국의 모든 길이 이곳에서 뻗어나가도록 설계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을까.

덴마크 아르후스대 역사·고전학과, 아르후스 사회 회복력 연구소, 도시 네트워크 진화연구센터, 인문 컴퓨팅 연구센터,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 고고학과, 영국 런던 퀸 메리대 물리·화학과, 밀라 이 폰타날스 인문학 및 과학 연구소, 프랑스 보르도-몽테뉴대, 네덜란드 라이덴대 고고학부 공동 연구팀은 고대 로마제국 전역에 깔린 도로 29만 9171㎞ 전체를 계량 분석한 결과 로마의 길이 일관되게 곧지 않았으며 육상 이동의 실제 길목은 로마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9월 16일 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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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 고대 로마 가도를 전수조사한 결과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티베레 강 하구에 있는 고대 로마의 항구 도시 오스티아의 시가지에 깔린 로마 가도의 모습  덴마크 아르후스대 제공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 고대 로마 가도를 전수조사한 결과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티베레 강 하구에 있는 고대 로마의 항구 도시 오스티아의 시가지에 깔린 로마 가도의 모습

덴마크 아르후스대 제공


고대 로마 제국은 ‘오현제’ 중 한 명이었던 트라야뉴스 황제가 사망하기 직전인 117년에 약 550만㎢에 이르는 최대 영토를 확보했다. 제국 곳곳을 잇는 도로망은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제국 전역의 구조를 정밀하게 계량화한 연구는 없었다.

연구팀은 자신들이 구축한 로마 가도 디지털 지도 ‘이티네르-에’를 1㎞ 단위로 40만 7800개 구간으로 잘라 경사도, 지형위치지수(TPI), 방위, 굴곡도를 계산하고 현대 포장도로 자료와 비교했다. 굴곡도는 실제 도로 길이를 양 끝점 직선거리로 나눈 값으로 1에 가까울수록 곧게 뻗어 있다는 의미다. 로마 가도의 굴곡도는 평균 1.048, 중앙값 1.0045를 기록했지만 현대 주요 도로의 1.024, 1.0026과 비교했을 때는 굴곡이 많았다. 서유럽, 포강 유역, 북아프리카 같은 저지대에서는 곧았고 산악지대와 동남유럽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최대한 직선을 선호했지만 제국 전체로 보면 로마 가도가 직선이었다는 통념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전체 도로의 90.57%에 해당하는 27만 955㎞는 최대 경사 9.09 수준으로 수레와 짐마차가 다닐 수 있는 범위였다. 또 유럽 최고봉 지대인 알프스 도로의 평균 경사가 2.68도로 피레네 3.14도, 타우루스 3.33도보다 오히려 완만했는데 이는 이탈리아와 유럽 각국을 잇기 위해 대규모 토목 공사가 동원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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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아 가도의 시작점 근처에 있는 로마 ‘드루수스 개선문’의 모습. 이 도로는 만들어진지 2000년 이상 된 고대 도로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덴마크 아르후스대 제공
아피아 가도의 시작점 근처에 있는 로마 ‘드루수스 개선문’의 모습. 이 도로는 만들어진지 2000년 이상 된 고대 도로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덴마크 아르후스대 제공


또 연구팀은 도로를 1만 516개 노드, 1만 4901개 구간의 네트워크로 바꿔 이동 시간 기준 매개 중심성을 계산했다. 매개 중심성은 모든 지점 사이의 최단 경로를 그렸을 때 그 길을 지나가는 횟수, 다시 말하면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니라 남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길목을 찾아내는 지표로 끊기면 전체가 마비된다는 뜻이다. 분석 결과 육상 이동의 대동맥은 지중해 연안도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과 달리 안티오카, 앙카라, 비잔티움(이스탄불), 코린토스가 로마보다 중개지로 유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로마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매개 중심성이 가장 높은 도로 위에 있지는 않았다. 물론 이번 분석은 육로만 다뤘고 장거리 이동을 담당한 하천길, 바닷길을 포함하면 로마의 중심성은 높아진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45개 속주 수도 중 24곳은 제국 전체 매개 중심성 상위 20%에 들었다.

간선도로가 지선도로보다 전략적으로 중요했다는 오랜 가정도 처음 수치로 확인됐다. 간선과 지선이 함께 있는 43개 속주 중 40곳에서 간선도로의 매개 중심성이 더 높았다. 속주별 도로망은 나일강·도나우강처럼 하천을 따라 늘어선 선형, 니시나 아우크스부르크처럼 한 거점에 모이는 중앙집중형, 갈리아처럼 여러 축이 퍼진 분산형으로 갈렸다. 중앙집중형은 교역과 군 보급을 통제하기 쉽지만 봉쇄나 표적 공격에 취약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로마 가도와 현대 주요 도로 위치의 상관계수는 0.46으로 중간 수준이었고 현대 인구밀도와의 상관은 0.17에 그쳤다. 버밍엄·브뤼셀·파리·마드리드처럼 작은 취락이 대도시로 성장한 곳에서 도로 밀도 증가가 가장 컸지만 로마 시대 도시화가 앞섰던 그리스·소아시아·북아프리카는 오히려 줄었다. 이베리아반도의 변화는 근대 이후 마드리드 중심의 중앙집권화와 이집트의 변화는 하천 운송에 의존하던 나일 계곡이 차량 운송으로 재편된 과정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연구를 이끈 톰 브뤼그만스 덴마크 아르후스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사람과 물자, 사상, 질병이 제국을 가로질러 어떻게 퍼졌는지 규명할 정량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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