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크리처’ 되더라도… 사랑하는 이가 나를 찾기를”

오경진 기자
수정 2026-09-15 00:45
입력 2026-09-14 20:18
‘서울작가축제’ 온 에밀리 정민 윤
영어로 쓴 시 직접 한국어로 옮겨여성·유색인·이민자… 타자성 성찰
ⓒ 한국문학번역원
‘시쓰기’는 시간의 흐름을 늦추는 행위다. 아니 정확히는 ‘존재하지 않던 시간’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온갖 자극이 빠르게 쏟아졌다가 사라지는 세계.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 ‘천천히’ 곱씹어 보는 것이니까. 어쩌면 그 ‘느림’이 인간을 구원할지도 모를 일이다.
오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차 방한한 한국계 캐나다 시인 에밀리 정민 윤(35)을 지난 13일 만났다. 영어로 시를 발표하는 시인은 2020년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다룬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열림원)을 한국어로 출간하며 국내 독자와 접점을 갖기 시작했다. 최근엔 한국에서의 두 번째 시집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부를 때’(자음과모음)를 펴냈다. 전작과 달리 영어로 쓴 시를 직접 한국어로 옮겼다. 그는 “시집을 아예 새로 쓴 기분”이라고 했다.
“영어로 시를 쓸 때 더 편해요. 시 창작을 영어로 배운 만큼 영어 시의 전통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겠죠. 한국 문단과 교류도 자주 하면 한국어로 시를 쓰는 데도 더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요.”
에밀리 정민 윤은 초등학생이던 2002년 캐나다에 이민했다. 일상에서는 영어와 한국어 모두 편하지만, 시를 쓸 땐 꼭 영어로만 쓴다. 지금은 미국 하와이에 거주하며 하와이대학교 마노아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타자성’을 향한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백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아시아인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고통은 ‘크리처’(Creature)라는 단어에 집약돼 있다.
“‘짐승’이라고 옮긴 크리처라는 단어가 제 정체성을 포괄하는 것 같아요. 여성, 유색인종, 이민자. 그런데 크리처는 그것만 의미하지 않죠. 동식물까지도 포함돼요. 크리처는 궁극의 타자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비유하기도 해요. 세계가 멸망하고 제가 어떤 크리처로 환생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저를 찾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이 세상을 견딜 수 있죠.“
한국문화를 향한 세계적 관심은 시인에게 그리 달가운 현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또 다른 고정관념과 환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한, 시인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윤리와 사랑 사이의 관계와 경계를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 그게 시 쓰기의 전부다.
“시는 어두운 곳에서 태어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첫 시집을 쓸 때 특히 그랬어요.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래도 사랑으로 시를 끝맺고 싶죠. ‘다른 방향’으로, ‘다른 곳’으로 가보자고 하는 게 시니까요.”
오경진 기자
세줄 요약
-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차 방한한 에밀리 정민 윤 소개
- 영어 시를 직접 한국어로 옮긴 새 시집과 창작 배경
- 여성·유색인·이민자 정체성과 크리처의 의미 성찰
2026-09-1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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