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박람궁리] 한국은행의 금 투자, 일희일비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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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09-14 00:39
입력 2026-09-13 23:46

韓 금 비중, 외환보유액 4%뿐
외국은 원유나 석유처럼 비축
세 번째 해외 금 투자 나선 한은
긴 호흡으로 전략자원 확보해야

금본위제도에서 금을 가장 많이 가진 기관은 각국 정부가 아니었다. 중앙은행이었다. 금이 있어야 화폐를 발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 또는 통화량은 국제무역의 결과에 따라 출렁거렸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각국이 그 금본위제도를 팽개쳤다. 그럼으로써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이 국제무역의 결과에 따라 출렁거리는 일은 사라졌다. 각국 정부는 민간의 수출입까지 금지하고 중앙은행을 통해 시중의 금을 빨아들였다. 그로 인해 각국 정부가 금을 가장 많이 가진 기관으로 등극하고, 금은 국가 전략자원이 되었다.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정책당국이 가진 금의 양은 104톤인데,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시가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83%, 프랑스 80%, 이탈리아 79% 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나마 한국은행만 금을 가지고 있을 뿐, 정부가 가진 것은 없다시피 하다. 금본위제도를 실시한 적이 없는 나라의 당연한 결과다.

우리나라 정부가 금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이승만 정부는 ‘금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통해 금의 매매를 허가제로 만드는 한편 한국은행으로의 금 집중을 강제했다. 1973년 폐지된 그 법에 따르면, 전국의 금방들은 몽땅 불법이었다.

금에 관한 임시조치법은 1937년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조선산금령’을 베낀 것이다. 조선산금령은 중일전쟁 수행을 위해 필요한 자금의 절반 이상을 식민지 조선에서 금으로 조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조선은행에 금의 집중과 일본으로의 반출 임무를 부여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중 조선은행이 사들인 금은 수백 톤이었지만, 해방 당시 조선은행에 남은 금은 1.2톤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1955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할 때 탈탈 털어서 쿼터로 납입했다.

이후 한국은행은 국내산 금으로 빈 금고를 채웠다. 과거 IMF 회원국들은 ‘금 1온스=35달러’라는 고정가격을 유지해야 했으므로 한국은행은 그 가격으로 매입했다. 그래서 국내 금광업자들은 한국은행과의 거래를 싫어했다. 영세한 채굴 시설 때문에 국내 금 생산 단가가 비교적 높았으므로 공시 가격보다는 비싼 값으로 시중에 팔려고 했다.

다른 문제도 있었다. 한국은행이 금 매입을 늘리면 시중 유통 물량이 줄면서 국내 금값이 뛰고, 밀수도 늘어났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법률과 현실 사이에서 늘 좌고우면했다. 국내산 금만 찔끔찔끔 사들이는 바람에 금 보유량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제6공화국이 시작되자 그마저 중단했다. 외환위기와 더불어 잠깐 변화가 생겼다. ‘범국민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되자 한국은행이 나섰다. 전국 가가호호 장롱에서 나온 금 3톤을 매입했다. 일회성이었다.

외환보유액 증가에 맞춰 부작용 없이 금을 비축하려면 결국 해외로 나가야 한다. 외국에서 오래 산 신병현 총재가 그걸 깨달았다. 수출이 한창 늘어나던 1978년 해외에서 3톤의 금을 샀다. 하지만 금을 사자마자 오일쇼크가 시작되고, 해외 금 매입은 까마득히 잊혔다. 해외 금 매입은 30여년이 지난 2011년 재개되었다. 금이 너무 적은 것에 놀란 김중수 총재가 무려 90톤을 사들였다. 하지만 국제 금값이 떨어지면서 한국은행에 조리돌림에 가까운 비난이 쏟아졌다. 후임 총재들은 외환보유액이 무럭무럭 늘어나는데도 황금 보기를 돌같이 했다.

이제 한국은행이 세 번째 해외 금 투자에 나섰다. 금값이 떨어질 때 비난받을 수 있음을 단단히 각오한 듯하다. ‘미움받을 용기’다. 이상하게도 그런 용기는 주로 해외파 총재들만 가지는 특징이었다. 신현송 총재처럼.

금은 국가 전략자원이다. 그래서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는 원유나 식량처럼 정부가 금을 비축한다. 만일 한국은행이 계속 금 비축을 전담해야 한다면, 방식을 바꿔야 한다. 총재 성향에 따라 ‘가다 서다’ 하는 식의 금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 금값 동향에 일희일비하면서 한국은행을 다그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깊고 긴 호흡이 필요하다. 지금 중국인민은행은 22개월째 쉬지 않고 꾸준히 금을 사 모은다.

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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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
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
2026-09-1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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