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어버린 손가락도 지독한 차별도 넘었다… 3085 안타 제조기
박현진 기자
수정 2026-09-10 18:00
입력 2026-09-10 18:00
‘日 프로야구 영웅’ 재일교포 장훈 별세
4살에 오른손 화상, 5살엔 원폭 피해日통산 최다안타… 명예의 전당 헌액
장애·민족 차별에 맞서 대기록 성취
은퇴 전까지 귀화 않고 韓국적 유지
연합뉴스
“짧게 깎은 머리, 불그레한 혈색, 활기찬 표정.” 일본 프로야구에서 23시즌 동안 ‘안타 제조기’로 뛰다 은퇴한 직후 장훈을 인터뷰한 서울신문(1981년 11월 11일자)에 실린 장훈의 첫인상이다. 하지만 은퇴 이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다소 뜻밖에도 “당분간 쉬고 싶다”며 “저를 보고 건방진 녀석이라고들 한다”는 말을 남겼다. 민족 차별이 극심했던 일본에서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고군분투해야 했던 짐을 내려놓은 후련함과 피곤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국에선 고난을 극복한 불굴의 투지로, 일본에선 불멸의 기록을 남긴 야구 영웅으로 기억되는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지난 9일 오후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86세.
도쿄 교도 연합뉴스
●“핸디캡을 핑계 삼은 적 단 한 번도 없다”
1970~80년대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타자로 군림한 장훈은 일제강점기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당시 한국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가 싸워야 했던 것은 민족 차별에 더해 장애인 차별이기도 했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장훈은 네 살 때 모닥불을 피워 놓고 고구마를 구워 먹다가 후진하던 트럭에 받혀 오른손에 화상을 크게 입었다. 엄지와 검지가 심하게 휘었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붙어버렸다. 다섯 살이던 1945년 8월에는 집에서 3㎞ 남짓 떨어진 곳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며 피폭됐다. 그의 큰누이는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사망했다.
서울신문 DB
장훈이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일본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에서 경기를 하던 야구 선수들이 푸짐한 음식에 두둑한 출전수당까지 챙기는 것을 보고는 야구 선수가 되면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 뒤늦게 야구에 입문해 재능을 꽃피웠으나 고교 시절 어깨 부상을 입으면서 더이상 투수로는 뛸 수 없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타격에 전념했다. 손바닥의 물집이 터져 피가 흐를 때까지 타이어를 때렸는데 피 때문에 방망이가 미끄러지자 피범벅인 손바닥에 붕대를 감아 가며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는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장훈을 영입하려던 구단에서 외국인 선수를 2명으로 제한하던 규정을 이유로 들며 장훈에게 일본 귀화를 권유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일본야구기구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선수를 외국인 선수 규정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을 신설하면서 프로선수가 될 수 있었다.
연합뉴스
●“팀을 살린다” 안타의 가치 강조
장훈은 생전에 타격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공을 끝까지 끌어당겨 보고, 배트를 짧게 쥐고, 중견수 앞으로 받아치는 것. 그것뿐이다.” 장훈이 일본 프로야구에서 개인 통산 안타 1위(3085개)라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남긴 건 결국 기본을 잊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덕분이었다. 그는 1966년부터 1974년까지 9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고, 일본 프로야구 통산 역대 타격 3위(타율 0.319), 홈런 공동 7위(504개), 타점 4위(1676개)에 올랐다. 1990년에는 일본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연합뉴스
●한중일 주축 ‘아시아 리그’ 비전 제시
은퇴 이후 일본 국적을 취득하기는 했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받으면서도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선수 생활을 이어 가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자긍심을 심어 줬다. 장훈은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역을 맡아 2005년까지 활동했고, 한국 선수들의 일본 진출도 도왔다. 1981년 당시 서울신문 인터뷰에서도 그는 한국 야구의 전망이 밝다며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그가 제안했던 ‘아시아 리그’는 지금도 여전히 매력적인 미래 비전으로 남아 있다. “아시아 리그 우승팀과 미국의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자웅을 겨루는 진정한 세계 최강을 가린다는 구상도 해볼 만하죠.”
박현진 전문기자
세줄 요약
- 오른손 화상·원폭 피해 딛고 야구 인생 개척
- 민족·장애 차별 속 한국 국적 지키며 활약
- 일본프로야구 통산 3085안타, 명예의 전당 헌액
2026-09-1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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