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윤·최인식·김기훈의 힘… ‘니벨룽의 반지’ 압축한 완벽한 요약본

최여경 기자
수정 2026-08-17 00:43
입력 2026-08-17 00:43
3시간 45분의 하이라이트 콘서트
성악가 14인 생생한 연기 열정 호평
균형 깨져 불안한 오케스트라는 흠
국립오페라단 10월부터 ‘원본’ 공연
부천아트센터 제공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니벨룽의 반지’는 무대에 올리는 일 자체가 사건이다. 26년에 걸쳐 완성한 4부작을 다 듣는 데만 16시간이 걸린다. 1876년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전막이 초연된 지 150년이 흘렀지만 국내에서 전막을 온전히 만나기란 여전히 어렵다. 지난 8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14일 경기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린 하이라이트 콘서트는 그 간극을 파고들었다. 각 부를 50분 안팎으로 압축해 3시간 45분(인터미션 20분 포함)에 담았다.
신들이 황금 반지를 손에 넣는 1부 ‘라인의 황금’부터 그 반지가 신들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4부 ‘신들의 황혼’까지, 인과를 따라가기 어렵지 않게 서사의 뼈대를 잘 살렸다.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린 공연의 힘은 사람에게서 나왔다. 기획자인 바리톤 사무엘 윤(알베리히·하겐)을 비롯해 바리톤 최인식(보탄·방랑자)·김기훈(도너·군터), 테너 김재형(지그프리트), 소프라노 이명주(브륀힐데)·김은희(지글린데) 등 성악가 14명은 무대 장식 없는 2D형 공연에 생생한 연기를 가미해 3D로 만들었다. 99인조 오케스트라를 이끈 아드리앙 페뤼송은 공연 내내 서서 지휘하면서도 입 모양으로 노래를 따라 하며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였다.
사무엘 윤은 ‘명불허전’이었다. 1부에서 알베리히 역할을 할 때는 재킷을 벗어 머리에 뒤집어쓰고 쪼그려 앉아 두꺼비 흉내를 내며 객석에서 웃음을 끌어냈다. 4부의 하겐은 정반대였다. 무대 좌우를 오가며 지그프리트와 군터, 브륀힐데, 구트루네(김지원)를 파멸로 몰아넣는 교활함, 그 자체였다. 알베리히와 하겐은 부자지간이다. 아버지가 반지에 건 저주가 아들의 몸을 빌려 실현되는 과정을 같은 목소리로 풀어내며 탄탄한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최인식과 김기훈은 엄청난 성량과 또렷한 발성으로 유럽 극장들이 아끼는 바리톤이라는 그들의 명성을 입증했다. “관악기 소리가 워낙 커서 성악가의 성량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던 김기훈의 소리는 대편성 오케스트라 앞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4부 마지막 지그프리트를 화장(火葬)하는 장면은 공연장 전체에 붉은 조명이 켜지며 분위기를 최대치로 올렸다.
오케스트라가 불안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부 ‘발퀴레’에 등장해 4부까지 이어지는 ‘발퀴레의 기행’ 선율은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유도 동기여서 정확한 재현이 필수인데, 관 파트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발퀴레의 기행’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지옥의 묵시록’(1979)에서 활용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가장 유명한 곡에서 생긴 균열은 성악이 제 몫을 다했기에 더욱 아쉽다.
최인식은 앞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두고 “가수뿐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모든 조건이 블렌딩돼야 시너지가 난다”고 말했다. 이날의 결과는 그 말의 정확한 증명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남은 것은 분명하다. 바이로이트에서 알베리히를 불러온 사무엘 윤, 쾰른에서 ‘반지’ 전편을 소화한 최인식, 올해 베를린 필하모닉과 ‘라인의 황금’을 부른 김기훈, 김재형과 이명주까지 각자 유럽에서 쌓은 이력이 한자리에 모여 대작을 완성한 것은 초연 150주년을 기념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이었다고 할 만하다.
완벽한 요약본을 읽었으니 남은 것은 원본을 감상하는 일이다. 국립오페라단은 오는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1부 ‘라인의 황금’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린다.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공연하는 장기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최여경 선임기자
세줄 요약
- 4부작을 3시간45분으로 압축한 하이라이트 콘서트
- 사무엘 윤·최인식·김기훈 등 성악가 14명 활약
- 서사와 연기 살렸으나 관악 균형은 아쉬움
2026-08-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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