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라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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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경 기자
홍희경 기자
수정 2026-04-20 00:10
입력 2026-04-1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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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귀퉁이에 라일락 나무 몇 그루가 있다는 건 좀처럼 알기 어렵다. 평소엔 관목처럼 사방으로 늘어진 가지 때문에 눈길이 가지 않던 자리. 어느 해엔 저기 꽃나무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겨울을 난다. 그러나 이맘때쯤 향기를 내뿜기 시작하면, 건물 앞의 잘 가꿔진 조경을 단숨에 제압한다.

라일락은 본래 동네 담장 안에서 자주 보던 나무다. 오래된 집 마당 구석, 골목 안쪽에 심어 두고 그 아래에서 아이들이 숙제를 미루며 놀던 꽃. 사대문 안 관공서 거리 한복판, 세종대로 복판에서 보는 꽃은 그래서 더 각별하다. 바쁘게 사무실로 향하던 걸음을 향기 앞에서 잠시 멈추면, 어릴 적 친구에게 전화라도 걸어 볼까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올해도 라일락이 지는 줄 모를 것이다. 라일락이 떨어지는 동시에 건물 계단 옆 잔디가 진분홍 꽃잎으로 물들기 때문이다. 잘 깎인 초록빛 잔디 대신 분홍꽃 무성한 꽃잔디로 뒤덮인 석축 화단에 또 몇 주 동안 홀릴 게 분명하다. 평소엔 있는지도 모를 무심한 나무와 풀들이 저마다 가장 빛나는 계절을 지나고 있다.

홍희경 논설위원
2026-04-2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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