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사회면] 택시 횡포와 ‘나라시 택시’/손성진 논설고문
손성진 기자
수정 2018-10-28 17:51
입력 2018-10-28 17:34
일제 ‘코로나’ 택시가 도입되면서 1966년 1월 택시요금이 기본요금 60원, 500m당 10원으로 두 배나 올랐다. 당시 지프를 개조해 만든 시발택시가 1960년대 중반에도 100대 넘게 있었다. 시발택시 기사 120여명이 택시요금 인상으로 구식 시발택시는 승객들이 외면한다며 도리어 요금을 내리라고 당국에 요구한 적도 있다(동아일보 1966년 3월 3일자).
그 무렵 자가용 차량의 불법 영업행위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시간에 쫓겨 택시요금의 3~5배를 불러도 기꺼이 지불하고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 무교동, 신세계백화점 앞, 명동에 자가용 택시들이 줄지어 있었다. 한 달 전세, 하루 전세, 1시간 전세로 빌려주는 자가용도 있었다. 통금에 제약을 받지 않는 호텔 택시는 택시요금의 10~15배를 불렀다. 1990년대에 들끓었고 지금도 가끔 보이는 ‘나라시 택시’의 원조들이다(경향신문 1966년 3월 30일자). 현재 택시 기사들이 ‘카카오 카풀’을 빗대어 비난하는 그 나라시 택시다.
합승택시는 1950년대에 택시가 부족할 때 허가해 준 적이 있다. 9인승으로 미군 트럭 엔진을 뜯어 개조한 차량이었다. 일반 택시 합승은 출퇴근 시간에 한해 허용하기도 했다. 택시 합승은 불법과 허용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1982년부터 완전히 금지됐다.
sonsj@seoul.co.kr
2018-10-29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