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올바른 법관평가제 정착 기대하며/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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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3-16 00:22
입력 2009-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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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변호사
금태섭 변호사
1979년 발간된 ‘지혜의 아홉 기둥’(원제 The Brethren)이란 책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하여 유명해진 밥 우드워드를 비롯한 2명의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미국 연방대법원에 대하여 쓴 책이다. 당시까지 베일에 가려졌던 법원의 속사정이 이 책을 통하여 샅샅이 드러났다. 저자들은 기자 출신답게 철저한 취재를 통하여 대법원에서 판결 내용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 갈등, 합의 과정 등은 물론 은밀히 이루어진 대화까지도 상세히 적어놓고 있다. 어떤 대법관이 수줍음을 잘 타는지, 대법관들은 서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신임 대법관을 임명하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사람들이 후보자로 거론되는지 직접 보고 들은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그 취재력이 감탄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듯 대법관들의 행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 법원의 권위가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괜한 염려가 들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의 발간이 미국 연방대법원의 평판을 땅에 떨어뜨렸다거나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평가는 없다. 오히려 사건의 결론을 두고 고민하는 법관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하여 국민들이 법원에 대하여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법학도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2008년도에는 제프리 투빈이라는 뉴요커 기자가 그 후속편 격인 ‘연방대법관의 수는 9명이다’(The Nine)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원래 민주주의 국가에서 고위 공직자는 선거에 의하여 뽑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관은 임명직이다. 법관을 선거로 뽑을 경우에는 판사들이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고 가장 독립적이어야 할 판사들이 여론의 눈치를 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논리 선상에서 법관이나 그들이 행한 판결을 평가하는 제도까지 경계하는 시각이 있다. 판사들이 평가를 의식하여 소신있는 재판을 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평가의 주체를 찾기 쉽지 않고 자칫 이해관계에 따라 부당한 평가가 이루어질 경우 그 폐해가 크다는 의견도 있다. 일리 있는 주장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법관이나 재판에 대한 평가를 금기시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판을 하는 법관의 권한도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민들에게는 그에 관한 정보를 얻고 평가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과 올 초에 걸쳐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우리 사법 사상 처음으로 법관평가제를 실시했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법원에 대한 평가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고, 반면 이해관계인인 변호사들이 법관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처음 하는 일이니만큼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토론과 연구를 통하여 올바른 제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만큼 법관이나 재판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나라도 흔하지 않다. 심지어 판결문도 전체의 5% 정도만 공개되고 있을 뿐이다. 법원에서는 판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지만, 공개법정에서 열린 재판의 판결문과 기록은 공공의 재산이다. 당연히 공개되고 적절히 평가되어야 한다.

대법관들의 사사로운 이야기까지 책으로 출판되는 나라가 있는 판에 판결문과 재판기록까지 비공개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의 “공개하면 평가를 받을 것이고 평가를 받으면 독립이 훼손된다는 식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공개하고 평가받고 논쟁 끝에 발전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에 맞다.”는 발언은 그러한 점에서 고무적이다. 치열한 고민을 거쳐 공정하고 올바른 법관평가제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금태섭 변호사
2009-03-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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