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20년만에 5·18유공자로 인정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최치봉 기자
수정 2008-07-01 00:00
입력 2008-07-01 00:00

1980년 5월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천배씨

이미지 확대
김천배씨
김천배씨
1980년 5월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던 고 김천배(전 광주YMCA이사·당시 64세)씨가 28년 만에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상이후 사망자)로 인정됐다. 광주시는 30일 최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를 열어 당시 고문과 투옥 등의 후유증으로 8년 후인 1988년 숨진 김씨를 유공자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수차례의 유공자 신청에도 불구, 김씨에 대한 유공자 인정이 늦어진 것은 가족들이 신청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의 딸 은경(66·경기 광명시)씨는 “아버지가 공적을 내세우려 하는 성품이 아닌 데다 생존시에도 ‘5·18 참여는 당연한 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가족간에도 이견이 많았다.”며 “그러나 고인이 겪었던 일을 가족사로만 묻어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신청했다.”고 말했다.

5·18 당시 시민단체 활동에 전념하던 김씨는 5월21일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이 경찰서 무기고 등을 습격하자 다음 날인 22일 고 홍남순 변호사, 고 이성학 장로, 김성용 신부, 이기홍 변호사 등 광주지역 원로들과 함께 ‘시민수습대책위’를 결성, 항쟁 지도부와 계엄군 사이를 오가며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앞장섰다.

미국 예일대 신학부에서 수학했던 그는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광주 현장을 취재하던 외신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광주의 실상을 알렸다.

이후 그의 행보는 수배와 도피, 고문과 투옥으로 점철됐다.‘항쟁지도부 쪽을 대변했다.’는 이유 등으로 내란부화수행 및 계엄법 위반 혐의로 수배됐다.



그는 도피생활을 하다 81년 9월 경찰에 체포됐다. 재판과정에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그러나 88년 3월 광주 기독병원에서 민주화의 새벽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가족들은 당시 김씨의 유해를 망월동 구 묘역에 안장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2008-07-01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