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탄생교육실 탯줄의식 전시코너 새로 꾸며
문화전문 기자
수정 2007-11-29 00:00
입력 2007-11-29 00:00
서산시청 제공
조선 왕실의 태실은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에 집중분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을 전후하여 태실에서 태항아리들을 꺼내 이왕가 박물관으로 옮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왕가 박물관은 해방 이후 소장품을 국립고궁박물관의 전신인 궁중유물전시관에 넘겼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성종과 성종비의 태항아리가 나란히 선을 보이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연산군의 생모인 성종비 윤씨의 내항아리가 있다는 것은 왕실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안태의례가 유행했음을 보여준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귀(1557∼1633)가 쓴 ‘묵재일기’에는 사대부 사이에 안태의례가 행해지고 있다는 내용이 있으나, 그 증거는 이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경기도 광주시 경안면 태전리에 있던 성종태실은 1928년 창경궁으로 옮겨졌다.
연산군의 원자 금돌이(金乭伊)의 태항아리는 왕실에 도자기를 공급하는 사옹원 분원이 생긴 이후 백자 태항아리가 정형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연산군의 원자가 어린 시절 금돌이라고 불리었음은 함께 전시되어 있는 태지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태지석은 주인공이 태어난 연·월·일 등을 기록한 뒤 묘지명처럼 백자로 구워 태실에 넣었다.
정조의 내항아리는 바닥에 개원통보(開元通寶) 한 개가 놓인 상태로 전시되어, 동전 위에 탯줄을 올려놓았던 안태 방식의 일단을 보여준다.
한편 전시실 끝에는 충남 서산에 있는 명종태실이 실제의 4분의3 크기로 재현되어 있다. 새롭게 고증하여 숙종 당시 수리되었을 때의 원형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한다.
박상규 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안태의례는 중국의 제도가 아닌 우리 고유의 풍속으로 조선 왕실에서 꽃을 피웠다.”면서 “왕조가 지속되려면 왕실이 번창해야 하고, 지혜로운 군주의 대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염원을 안태의례는 담고 있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2007-11-2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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