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삶의 파노라마
김종면 기자
수정 2006-04-15 00:00
입력 2006-04-15 00:00
풍속화는 신분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평양감사향연도’ 가운데 한폭인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를 보면 당시의 복식문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책은 그림 속 등장인물들에 일련번호를 매겨 양반·중인·상민·천민의 남성의복 등을 분석하며 18세기 신분제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적 양상들을 짚어나간다. 도포는 양반 신분의 상징이다. 고려시대의 깃이 곧은 직령(直領)에서 유래한 도포는 사대부가 예를 차리기 위해 입는 것으로, 그들의 평상복이자 출입복이었다. 도포의 색깔은 여러 가지였다. 평상시에는 백색 도포를 입었고, 길복(吉服)으로는 옥색이나 연갈색을 입었다. 청색의 청포도 있었다. 도포 외에 반(班)과 상(常)을 가르는 신분의 상징을 하나 더 든다면 술띠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 풍속화를 보면 양반의 가슴에는 반드시 술띠가 둘러져 있다. 하지만 상민은 조선시대 금제(禁制)에 따라 술띠를 착용할 수 없었다. 술띠야말로 양반의 도포를 진정 도포답게 만드는 중요한 장식이었다.
우리 민족의 식문화의 중심은 단연 밥이다. 삼국시대까지 밥은 곡물을 시루에 넣고 찌는 증숙반(蒸熟飯)이었다. 시루에 찐 밥은 술밥같이 꼬들꼬들해 가마솥에서 지은 찰기 흐르는 밥과는 큰 차이가 있다. 통일신라 이후부터는 솥을 이용해 밥을 짓는 자숙반(煮熟飯)이나 취반(炊飯)이 일반화됐다. 이 책에서는 ‘미암일기’‘묵재일기’등 조선시대 양반들이 남긴 다양한 일기 자료를 활용해 당시 식생활 문화의 실상에 다가간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쌀밥에 고깃국’을 최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환곡을 받아 생활하던 하층민에게는 그림의 떡. 상당수의 하층민들은 보리를 수확하는 5월부터 가을걷이를 하는 9월까지 쌀이나 조 대신 보리를 주식으로 삼았다. 보리가 생산되는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의 ‘맥절(麥節)’에는 보리를 더 싸게 사들이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의 대식(大食)습관을 다룬 대목은 쓴웃음을 짓게 한다. 조선 전기 훈구파의 거목 이극돈은 상소를 올려 풍년이면 먹을 것을 아끼지 않아 중국 사람이 하루 먹을 분량을 한 번에 먹어 치운다고 개탄했다. 조포석기(朝飽夕飢)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아침에 양식을 다 먹어치워 저녁에는 굶는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주거생활은 어땠을까. 책은 호구단자와 준호구, 가옥문기, 가좌책 등을 면밀히 분석해 그들의 주거 양태를 밝힌다.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오늘날처럼 셋집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주거생활에서 온돌문화는 빼놓을 수 없는 대목. 온돌방은 고려 말에 등장한 새로운 공법으로, 지배층을 중심으로 점차 보급됐다. 그러나 조선 초까지도 관청이나 부잣집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제한적이었으며, 그것도 주로 병자나 노인의 방에만 설치됐다. 온돌이 민간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대략 16세기경으로, 그전까지는 입식생활이 주를 이뤘다. 의식주의 역사는 그동안 복식사나 음식사, 건축사 등 각각의 영역에서 통사적으로 혹은 양식적으로 다뤄져 왔다. 이 책은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보다 대중적인 시각에서 의식주의 생활사를 한데 아우른다. 조선 풍속화와 고문서를 고리로 학제간 연구의 폭을 한층 넓혔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1만 7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2006-04-1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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