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능산리 유적/발굴할수록 규모 커진다/국립부여 박물관
기자
수정 1994-06-29 00:00
입력 1994-06-29 00:00
원찰인가,재실인가,빈전인가,아니면 사직인가.지난해 말 금동용봉봉래산향로를 들어낸 부여 능산리 집터가 파면 팔수록 더욱 규모가 큰 백제 유적으로 드러나고 있어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관장 신광섭)은 지난 4월30일부터 실시한 제3차 발굴조사 결과 이 집터는 동서 60여m,남북은 60m를 넘는 초대형 유적일 가능성인 큰 것으로 밝혀냈다.
이 유적이 있는 곳은 사비도성의 외성인 나성과 능산리고분군 사이 좁은 골짜기.박물관측은 지난 24일 가진 발굴 지도위원회의에서 이 곳이 능산리고분에 묻힌 사람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법당인 원찰이거나,능묘에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 아니면 왕실이 상을 당했을 때 왕이나 왕비의 관을 잠시 두었던 빈전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장경호 문호재연구소장 같은 이는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 있는 귀중한 고구려 중기 종묘 사직터인동대자유적과 구조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백제의 사직터였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지금까지 이 유적에서 발굴된 집터는 모두 7곳.지난해 3개의 건물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데 이어 올해 4개 건물지가 발굴됐다.박물관측은 이 유적이 가로 37.4m,세로 18m 규모인 제5건물지를 상부 중심축으로 건물들이 화랑의 형태로 사방을 둘러싼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 추정이 옳다면 앞으로 이 유적에서는 이왕에 발굴된 숫자 이상의 건물지가 더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또 건물군의 중심에서도 건물지의 일부가 확인됐다.만일 절이라면 김당에 해당하는 위치다.추가조사에서 이곳이 금당지로 확인되어 절이었음이 분명해지면 그 앞에는 또 탑이 세워져 있었을 가능성이 커진다.이처럼 이 유적은 전체적인 발굴이 끝나기 전에는 그 성격이 어떻게 판명될지,또 앞으로 어떤 유물을 얼마만큼 쏟아낼지 도무지 알수 없는 상태다.
고고학계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진 것이 없던 백제시대 건축기법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자료들을 뚜렷이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특히 발굴 현장에는 화재로 무너진듯 탄화된 건물 재목과 기왓곳이 유지된채 겹겹이 쌓인 기왓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지도위원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이처럼 의미있는 유적으로 밝혀지자 이상수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연구실장은 지도위원회에서 『많은 예산이 들더라도 발굴과 함께 보존을 위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면서 전체에 거대한 뚜껑을 덮어 영구보존을 덥고 관람객들이 둘러볼수 있도록 해 역사의 교훈을 후세에 남기는 산 교육장으로 만드는 방식을 제시해 공감을 얻기도 했다.
능산리 건물지에 대한 제3차 발골조사는 오는 7월13일 일단 마무리된다.그러나 이후 책정된 발굴 예산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따라 부여박물관은 이 유적의 중요성이 입증된 만큼 장마가 끝나는대로 발굴주체인 충청남도에 별도의 예산을 요청해 추가발굴에 들어가기로 했다.<부여=서동철기자>
1994-06-29 1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