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의 소모전은 안된다/이영섭 전 대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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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5-05 00:00
입력 1991-05-05 00:00
◎이 5월…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폭력」이 「나라 위한 길」일 수는 없어

온 나라가 시끄럽다. 참으로 안된 일이다.

지난달 26일 명지대 강경대군이 전경에 맞아 사망한 뒤 3명의 학생이 잇따라 분신자살을 기도,2명은 이미 숨을 거두었고 1명은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다.

유족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비보를 접하고 정말로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극단」 미화 말아야

작금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자제와 함께 깊은 자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더 이상 공방전을 벌이거나 소모전을 펴서는 안된다.

학생들은 냉정을 되찾아 학생신분임을 잊지 말고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할 때가 됐다.

특히 분신자살은 우리 모두에게 크나 큰 충격과 함께 분노를 던져 주었다.

분신과 같은 극한 행동은 인간의 신경을 극도로 자극한다.

인간에게는 자기자신을 보호하는 본능이 있다.

물론 학생들이 분신을 기도하기까지에는 남 모를 번민과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여간한마음 가지고서는 이같은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우리사회 일각에 이러한 일련의 극한 행동에 대해 말리려 들지 않고 그것을 영웅적인 행동으로 미화시키면서 찬양하는 기풍이 만연돼 있음은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풍은 또다른 분신 등 상승작용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죽은 학생들의 영령앞에 무슨 탓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들의 과격시위나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 다시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할 때가 왔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학생시위는 해방 이후 4·19를 정점으로 영웅시 되어온 게 사실이다.

기성세대가 하지 못한 일들을 치러내 의거라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순수하고 정의로운 「그 마음」에 기성세대는 찬사와 함께 그분들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기대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같은 순수한 열정들이 사라지고 상아탑은 어느덧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된 느낌이다.

○공권력 대항은 안돼

이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십분 옳다 하더라도 폭력을 수반한 주의·주장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젊은이들이여!

무모하게 피를 흘리지 말고 부득이한 경우,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에 한해 분연히 움직여 달라.

공감을 얻지 못하는 행동은 일시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고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정부도 이번 사건이 일어난 데 대한 반성과 아울러 국민앞에 대사죄를 해야 한다.

우선 데모진압 방식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그동안의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방식을 물리치고 어디까지나 소극적이고 선도하는 입장에서 부드럽게 막아야 한다.

부드러운 치안과 정치 속에 국민들은 여유를 느낀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그 정부에 대해 「좋다」고 칭찬하고 영광이 깃들일 것이다.

경찰의 과잉진압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학생들이 먼저 화염병·돌·각목을 사용하는 등 「폭력」을 동원한 데 기인한다.

공권력에 대항하는 폭력을 그대로 둘 수만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을 진압하기 위해 마치 적과 대치하는 것처럼 삼엄한 상태에서 전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민들에게는 정말 보기 민망한 일이다.

○「구국의 길」 생각을

어째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같은 동지이자 똑같은 국민끼리 그렇게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모두가 힘을 한데 모아 싸워도 선진국을 따라잡기 힘든 때이다.

특히 올 들어서는 수출부진으로 적자폭이 커지고 물가가 뛰는 등 국가경제는 물론 서민들의 생활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이거나 장기농성을 벌이는 것 등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모두가 합심해서 자유민주주의의 공고한 기틀을 다질 시기이다.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을 발휘해 「불황의 늪」에 빠진 경제를 회복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경제에 발을 맞춰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살 수 있고 이길 수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일부 교수 등이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장기농성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무거운 마음을 가눌 수 없다.

대학교수들이 사랑하는 제자를 잃은 슬픔에 그냥 가만히 보고 있을 수 만은 없다는 심정에서 이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때문에 농성 등 극단적인 행동도 일응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보다는 젊은이들의 「앞길」에 대해 진취적이고 도움이 될 만한 선도적인 방향으로 움직여 주었으면 하는 것이 지각있는 국민들의 소망이라는 것을 고언해 두고 싶다.

그리고 정치인들도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반성과 함께 무엇이 「구국」을 위한 길인가를 통찰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근원은 「정치부재」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성 싶다.

○“정치부재” 반성을

이처럼 심각한 사태에 대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심전심으로 단합하여 위기에 처한 정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지혜를 짜내야 한다.

국민들을 착하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높은 정치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여기에 정치인들이 여야 각각 자기들만을 위한 주의 주장이나 당리당략만을 위해 이번 사태를 이용한다면 국민들에게 추악한 모습만 보여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고해 둔다.

모두가 냉정과 이성을 되찾아 보다 신중해지고 특히언행에 조심했으면 한다.
1991-05-0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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