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온난화의 주범이 펭귄 똥이라고? [사이언스 브런치]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수정 2026-10-09 17:30
입력 2026-10-09 17:30
세줄 요약
  • 펭귄·바닷새 배설물, 눈조류 성장 촉진
  • 초록 눈 인산염 농도, 흰 눈보다 70배 높음
  • 반사율 하락으로 남극 눈·빙하 융해 가속
이미지 확대


얼음과 눈으로 가득한 남극반도 해안가에 최근 초록빛과 붉은빛이 번지고 있다. 이 색깔의 정체는 눈과 얼음 위에서 살아가는 아주 작은 미세 생물인 ‘눈조류’다.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는 이 미세 생물들이 눈밭 위에서 한꺼번에 자라면서 흰 동토의 땅을 초록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웨스턴워싱턴대 환경과학과, 콜로라도 볼더대 항공우주공학과 공동 연구팀은 남극 해안의 눈을 초록빛으로 만드는 결정적 원인은 다름 아닌 ‘펭귄의 배설물’이라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9일 밝혔다. 펭귄이 눈밭에 남긴 배설물이 눈조류에 비료 역할을 하며 폭발적 성장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지구물리학 분야 국제 학술지 ‘지구물리학 연구 저널: 생물지구과학’ 8일 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남위 63도에 위치한 디셉션섬부터 남위 68도 스토닝턴섬까지 위도 5도 범위의 남극반도 서쪽 해안 9개 지역에서 초록 눈, 붉은 눈, 깨끗한 흰 눈 등 111개의 눈 시료를 채취해 현미경과 화학 장비로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초록색으로 물든 눈 속에는 눈조류의 성장에 필수적인 영양소인 인산염이 대량으로 포함돼 있었으며 야생동물의 영향이 강한 곳일수록 인산염 농도가 높고 조류의 번성 정도가 심하다는 점이 증명됐다. 초록 눈의 인산염 농도는 붉은 눈보다 약 10배, 깨끗한 흰 눈보다 무려 7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지 확대
아델리펭귄 한 마리가 남극 반도의 눈밭을 뒤뚱거리며 걷고 있다. 펭귄들은 바닷새들이 눈밭에 남긴 인산염 가득한 배설물을 밟고 눈밭 전체에 퍼뜨린다. 이 과정에서 눈 속 조류에 영양분을 공급하게 된다.  미국 콜로라도 볼더대 제공
아델리펭귄 한 마리가 남극 반도의 눈밭을 뒤뚱거리며 걷고 있다. 펭귄들은 바닷새들이 눈밭에 남긴 인산염 가득한 배설물을 밟고 눈밭 전체에 퍼뜨린다. 이 과정에서 눈 속 조류에 영양분을 공급하게 된다.

미국 콜로라도 볼더대 제공


연구팀은 이 인산염의 출처가 펭귄과 바닷새의 배설물인 ‘구아노’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펭귄과 도둑갈매기 같은 바닷새들은 크릴이나 물고기를 잡아먹은 뒤 해안가 눈밭으로 돌아와 배설물을 남긴다. 펭귄들이 눈 위를 뒤뚱거리며 돌아다니는 동안 배설물이 발과 몸에 묻어 눈밭 전체로 넓게 퍼지게 된다. 바다에서 유입된 영양분이 배설물 형태로 육지 눈밭에 공급되면서 눈조류가 자라기 좋은 최적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바다의 먹이사슬과 육지 눈 생태계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발견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눈조류는 영양분과 환경 상태에 따라 자기 몸 색깔을 자유롭게 바꾼다. 게다가 펭귄 배설물 덕분에 인산염 같은 영양분이 넉넉하게 공급되면 조류는 광합성을 돕는 엽록소를 세포 속에 가득 채운다. 남극의 짧은 여름 동안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아 빠르게 자라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영양 상태가 좋은 눈조류는 짙은 초록색을 띤다. 초록 눈의 엽록소 농도는 붉은 눈보다 약 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영양분이 부족해지거나 햇빛이 너무 강하고 혹독한 환경이 되면 조류는 성장을 멈추고 몸을 보호하기 시작한다. 이때 조류는 붉은색 색소인 ‘아스타잔틴’을 만들어낸다. 아스타잔틴은 연어 살이나 새우 껍데기를 붉게 만드는 색소로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조류 세포를 보호하는 ‘천연 자외선 차단제’ 역할을 한다. 남극의 눈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은 조류가 영양분을 듬뿍 먹고 활발히 자라는 중이라는 신호이고 붉게 보이는 것은 혹독한 환경에서 버티고 있다는 신호인 셈이다.

눈조류가 번성해 눈의 색깔이 어두워지면 남극의 빙하와 눈이 녹는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핵심은 물체가 햇빛을 얼마나 반사하는지 나타내는 ‘알베도’(반사율) 개념이다. 깨끗한 흰 눈은 거울처럼 햇빛의 대부분을 반사하지만 눈조류가 자라 눈 표면이 어두워지면 햇빛을 반사하지 못하고 흡수하게 된다. 이를 생물에 의해 눈밭이 어두워진다는 의미로 ‘생물학적 암색화’라고 부른다. 연구팀에 따르면 붉은 눈은 흰 눈보다 햇빛 반사율이 약 20% 떨어졌고 초록 눈은 반사율이 약 40%나 떨어졌다. 반사율이 떨어진 만큼 눈은 햇빛 에너지를 흡수해 스스로 따뜻해지고 더 빨리 녹는다. 초록 조류가 눈을 녹이는 효과는 붉은 조류보다 약 2배나 더 강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를 이끈 엘리아 칸 콜로라도 볼더대 박사는 “기후변화로 해빙이 줄어들면서 젠투펭귄 같은 일부 펭귄 종은 번식지를 남쪽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는데 펭귄 서식지가 남쪽으로 이동하면 펭귄 배설물로 비옥해지는 눈조류 서식지 역시 함께 넓어진다”라며 “남극이 따뜻해질수록 펭귄과 바닷새의 배설물이 만든 초록 눈이 남극 전역으로 넓어져 남극의 눈과 얼음을 한층 더 빠르게 녹여 버리는 연쇄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내안의 AI 본성 분석 :
UNMASK ]
기사 읽는 습관에 숨겨진 당신의 MBTI는?
기사 반응 MBTI 확인
Q.
기사를 다 읽으셨나요? AI 퀴즈로 핵심 점검!
남극 눈을 초록빛으로 만드는 결정적 원인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